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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김해 대성동고분이 매몰한 금관가야의 편린

by taeshik.kim 2020.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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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대성동고분군서 금관가야 목곽묘 구조 밝힐 무덤 첫 발굴

송고시간2020-02-17 11:06

박정헌 기자


Excavation of Daeseongdong Tumuli in Gimhae by Daeseong-dong Tombs Museum

金海大成洞古墳群發掘 by 金海大成洞古墳博物館



발굴현장 전경


경남 김해시 대성동고분박물관은 국내에서는 드문 이 지역 대성동고분군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이를 남긴 금관가야 문화를 선전 홍보 교육하기 위한 현장형 문화시설이라, 무엇보다 그 전시내역을 보면 대성동고분군 발굴성과를 중심으로 하고, 그것이 위치한 곳 또한 고분군 경내라, 그 고분군에는 과거에 발굴조사한 이곳 고분을 그대로 노출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김해가 어떤 곳임은 말할 나위도 없으니, 삼국시대 금관가야가 흥성한 곳이라, 그것이 존재한 역사는 물경 500년을 헤아리기니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할지면 서기 42년에 김수로가 건국해 532년 그 마지막 구형왕이 나라 전체를 통째로 들어 신라 법흥왕한테 갖다 바치면서 종언을 고했으니, 애초 이름은 가야 정도였던 듯하고, 어느 시기에 금관가야를 자칭한 듯하다. 이는 아무래도 무슨 가야를 표방한 제국이 있어, 그네들과 차별하면서도 그런 다른 가야들의 종주국임을 표방한 명칭으로 보이거니와, 그리하여 그 앞대가리에 금관을 지칭한 것으로 본다. 


그 금관가야 왕조가 줄곧 도읍한 곳이 지금의 경남 김해라, 대성동고분군은 같은 지역 양동리고분군과 더불어 금관가야시대에 명멸한 이 왕조 왕과 그 가족, 나아가 그 주요지배층이 묻힌 공동묘지라, 그래서 더욱 중요성이 대두한다. 금관가야 흔적이라고 하면 무엇보다 왕궁과 왕성이겠지만, 현재로서는 무수한 도시화 산업화에 그 대부분이 망실되어 버리고 가끔 공사판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그 편린만 전할 뿐이다. 


반면, 그네들이 죽어서 산 집들이요, 그 대형 도시구역인 공동묘지는 그런대로 떼로 남아 전하거니와, 현재로서는 금관가야 역사를 비교적 온전히 알려주는 거의 유일한 증언자가 무덤이라 할 만하다. 그런 대성동고분군을 이번에 대동성고분군이 파제낀 모양이라, 이는 말할 것도 없이 문재인 정부가 국정핵심과제 100대 과제 중 하나로 당당히 가야사연구복원을 표방한 예산 배정이 있었던 데서 비롯한다. 




그 일환으로 양동리고분군도 동시 발굴에 착수했으니, 이곳은 한화문물연구원이라는 데서 김해시를 대리해 발굴하는 반면, 이곳 대성동고분군은 김해시 직접 발굴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 하나 알아둘 것은 두 곳 모두 현재까지 적지 않은 발굴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정확한 통계를 봐야겠지만, 두 곳 모두 대략 10차 어간을 헤아리는 발굴조사가 있었다. 


이번 대성동 발굴소식은 우리공장 김해발 저 기사를 통해 접했거니와, 아무리 기사라 해도 여지가 있는 곳이 너무 많아, 김해시에다가 정식으로 관련 자료를 요청했으니 왈....


"저 기사 이상 새로운 내용이 없어요. 지금 자료집 만드는 중이에요. 완성되는 대로 보내드릴께요 ㅋㅋㅋ" 


하는 것 아닌가? 그랬나 보다. 일단 보도자료 배포용으로 저 정도로 정리하고 그 자세한 발굴성과는 지금 한창 자료집 형태로 맹그는 중인갑다. 좀 기다려 보자. 


암튼 김해시청이 배포한 보도자료는 아래와 같다. 




대성동고분서 금관가야 목곽묘 구조 밝힐 최초 무덤 발굴

고분박물관 10차 학술발굴조사 성과 자문회의 개최


김해시 대성동고분군(사적 제341호)에서 금관가야 목곽묘(덧널무덤, 땅을 파고 나무판을 덧대 공간을 만든 무덤) 구조를 밝힐 최초의 무덤이 발굴돼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또 가야 형성기 사회상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될 무덤도 발굴됐다.


대성동고분박물관은 지난해 12월 9일부터 자체 인력을 동원해 박물관 북동쪽 평지 3,700㎡를 대상으로 제10차 학술발굴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물관은 지금까지 발굴한 이러한 중요 유구(옛 건축 양식의 실마리가 되는 자취)에 대한 학술자문을 얻기 위해 오는 20일 오후 4시 발굴현장에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자문회의를 개최하며 이를 바탕으로 오는 5월까지 발굴을 이어간다. 


이에 앞서 박물관은 지난해 7월부터 10월까지 옛 태광실업 공장과 기숙사 부지가 있던 구간 정비를 위해 시굴조사(터파기 조사로 유구의 분포범위를 확인)를 했다.


환두대도



이번 10차 조사는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가야시대 목관묘(널무덤, 땅을 파고 나무관을 넣어 흙을 덮은 무덤), 목곽묘, 옹관묘(땅을 파고 항아리 형태 토기에 시신과 여러 물건을 함께 넣은 무덤) 등 70여기에 대한 정밀 발굴조사이다.  


지금까지 발굴 성과를 보면 9차까지 조사된 100여기의 대성동고분군 무덤 중 보전 상태가 가장 온전한 4세기 초반 108호분의 경우 무덤 내부를 덮은 목개(무덤 나무뚜껑)가 그대로 남아있어 가야시대 목곽묘의 세부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최초의 자료가 된다. 

   

또 3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107호분은 대성동고분 최초의 왕묘로 평가받는 29호분과 동일시기 무덤으로 가야 형성기 사회상 파악에 중요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외에도 구슬 목걸이, 덩이쇠(鐵鋌), 머리둥근칼 등 가야시대 지배층 유물이 다수 확인됐다. 


대성동고분군은 금관가야 최고 지배계층의 묘역으로 지난 1990년 발굴이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잠정 목록에 오를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대표 유적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추후 발굴성과 공개회를 개최해 시민들에게 김해의 우수한 가야문화를 알릴 것”이라며 “관내 중요 유적과 유물의 지속적 연구를 위해 자체 연구인력을 활용해 학술발굴조사를 꾸준히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별첨  사진

 1. 전체 조사구역 전경  

 2. 108호 유구 전경 

 3. 104호 출토 구슬목걸이

 4. 100호 출토 환두대도 


***


보도자료에 의하면 목관 혹은 목곽 나무뚜껑을 발견한 듯이 문맥이 받아들여져서 박물관으로 구두로 확인하니 실물이 드러난 것은 아니고 그것이 썩어 굳은 토층? 이런 것이 발견됐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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