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신라를 둘러싼 모든 문화권에 다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周 왕조 시조) 후직后稷 엄마 강원姜嫄을 제사하는 비궁閟宮이 있고
고구려에는 주몽 엄마 유화柳花를 제사하는 국모묘가 있어 이를 신묘神廟라 했다.
백제엔 온조 엄마 소서노召西奴를 제사하는 국모묘가 있었다.
일본엔 천황가 뿌리인 여신 아마테라스天照大御神를 제사하는 종묘가 있으니 이를 일러 이세신궁伊勢神宮이라 한다.
유독 신라에만 국모묘가 없다?
없는거랑 있는데도 모르는건 반딧불과 번갯불의 차이다.
있는데도 모르는걸 우리는 이를 일러 당달봉사라 한다.
(December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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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묘國母廟란 무엇인가? 국모를 추모하는 공간 사당을 이름함이다. 국모는 개국주를 낳은 어머니를 말한다. 그런 까닭에 국모란 그 왕조를 있게 한 뿌리다.
국모묘에 대해 국부묘國父廟는 왜 없는가? 국부를 추숭하면 시조가 갈 데가 없어지는 까닭이다. 그래서 모든 창건주 개국주한테는 오직 엄마만 있을 뿐이다. 예수 봐라. 아버지는 없자나? 야훼라 선전했지만, 모든 개국주 시조가 아버지는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는 그 자리에다가 天을 갖다 놓는다.
예서 부모 중 오직 엄마만을 추숭하는 근간이 비롯한다. 그 엄마는 개국주 시조를 낳은 뿌리인 까닭에 곧 그 왕조를 있게 한 시작이다. 그래서 국모는 언제나 성대하게 추숭하며, 그를 위한 별도의 사당을 세우기 마련이라, 이를 일러 신궁神宮이라 하며, 그냥 밋밋하게는 국모묘라 한다.
따라서 국모묘는 당당히 종묘宗廟의 한 자리를 차지하거니와, 그것은 시조를 모시는 별도 공간인 시조묘始祖廟, 그리고 시조를 포함한 열성조를 봉안하는 종묘와 더불어 다 합쳐서 종묘를 당당히 구성하는 한 축이었다.
이 국모묘가 후대 남성 중심 유교문화가 확산하면서 자최를 감추거니와, 고려 왕조에서 국모묘가 따로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조선왕조 역시 국모묘가 따로 없다.
국모묘가 비롯하는 남상을 동아시아에서는 비궁閟宮이라 하거니와, 시경詩經 노송魯頌인가에 보이어니와, 그에 주하기를 후한 훈고학도 정현鄭玄은 閟, 神也 라 풀었으니, 곧 신궁을 비궁이라 했음을 본다.
그에 앞서 모형毛亨은 傳하기를 "閟, 閉也"라 했거니와, 문이 닫힌 모습으로 풀었거니와, 神이건 閟이건 閉이건 실은 자궁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여성의 성기에 대한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신궁神宮이라는 말 자체만으로도 국모 혹은 여성을 떠올려야 한다. 그에 봉안한 주신主神이 혁거세니 알지니 석탈해니 하는 주장은 사찰을 보고는 그에 봉안한 신이 예수라는 주장과 하등 다를 바 없다.
혁거세가 탄강한 경주 나정蘿井에 세운 사당은 볼짝없이 신궁일 수밖에 없고, 그 주신은 오직 혁거세 엄마 사소 부인이 있을 뿐이다.
신라 신궁이 누구를 위한 사당인지 그 비밀을 나는 시경을 읽다가 발견했다.
정현이 비궁閟宮을 신궁神宮이라 주한 장면을 보고는 놀라서 삼국사기 일본서기를 뒤졌더니 다 국모묘國母廟가 있었다.
신라에서는 2대 남해차차웅이 아버지 혁거세를 위해 시조묘를 세웠으니 이 시조묘가 후대 열성조를 위한 종묘로 갔던 것이다.
그러다 소지왕 혹은 지증왕 때 시조가 탄강한 지점에다 국모를 위한 사당을 세웠으니 그게 바로 신궁이었다.
실제 발굴성과를 봐도 나정엔 저 무렵에 원형 종묘 건축이 들어섰다.
신궁의 위치, 그 정체가 봄눈 녹듯 순식간에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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