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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나정과 나을, 그리고 生

by taeshik.kim 2020.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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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결과 드러난 나정. 맨위, 그리고 가운데는 문무왕 시대 무렵 팔각형 건물터 기단, 맨 아래는 그 중앙 부근에서 발견되는 구덩이. 애초엔 이를 우물 흔적으로 보았지만, 나중에는 심주心柱를 박은 흔적으로 밝혀졌다. 

 

아래 2004년 경주 나정 출토 성과를 다룬 내 기사는 고백하거니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심심풀이 땅콩 깨무는 기분으로 가볍게 쓴 글이다. 모든 기사가 심각해야 할 필요는 없듯이, 그냥 이런 유물을 두고 이렇게도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는 그런 생각에서 썼다. 

지나치게 가볍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방식으로라도 나정 발굴성과에 독자들한테 눈길 한 번 줄 수도 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심정이었다.

다시 고백하자면, 이후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상당한 타당성을 지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굴결과 드러난 나정은 신궁神宮임이 확실하고, 그 신궁은 박혁거세를 낳은 엄마를 주신主神으로 모신 국모묘國母廟임이 확실하다 보는 까닭이다. 

다시 말해 저 生은 국모가 시조 혁거세를 낳은 곳임을 의미하는 부호라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모르겠다. 생각은 항상 바뀌는 법이니깐, 그런 대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흔적으로 보면서 빙그레 웃어준다. 

문무왕 시대 어간 팔각형건물터 기단. 가운데 구덩이는 이 팔각형건물보다 먼저 이 자리에 있었던 원형 건물 심주 자리로 드러났다. 

 

2004.03.29 15:07:15
<나정 출토 기와 명문 '生'과 나을(奈乙)>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가 탄강한 곳이자  신라 소지왕(재위 479-500년)이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 제사시설인  신궁(神宮)  터임이 유력시되는 경주 나정(蘿井)에서 '生'(생)이라는 글자를 새긴 기와가  꽤  출토되고 있다.

'生'자가 새겨진 기와는 첫째, 제작시기로 볼 때 거의 예외없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7세기 후반에 해당하고, 둘째, 다른 글자 없이 '生'이라는 글자만 단독으로 확인된다는 특징이 있다.

 

生자 새김 기와 

 

'生'자명 기와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최근 중앙문화재연구원의 발굴 결과 '義鳳四年皆土'(의봉4년개토)라는 제작 절대 연대를 밝혀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됨으로써 비교적 용이하게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의봉(義鳳)은 당 고종이 서기 676년에 제정 반포해 사용하기 시작한 연호로, 의봉 4년은 서기 679년이다. 신라로는 문무왕 재위 19년에 해당된다.

이 '의봉4년'명 기와에서 '生'이라는 글자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제작기법 등을 볼 때 '의봉4년' 명 기와와 '生'자명 기와가 같은 시기에  제작되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生'이라는 글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현재로서는 궁금증만이 증폭될뿐, 이를 해명할 만한 적극적인 자료가 없다.

 

팔각형건물터 기단(왼)과 그 아래층에서 드러난 원형건물터 

 

몇몇 연구자는 나정이라는 곳이 박혁거세 탄강(誕降) 전설과  관련되는  곳임을 주목하면서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에서 '낳다, 나다'라는 뜻을 지닌 '生'자를 쓴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반(半) 농담 조로 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生자가 의미하는 바를 해명할 수 있는 방안이 아주 없을까?

이런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신라의 전통 중 하나가 기와가 사용되는 장소를  해당 기와에다가 명문으로 표시한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례를 보면, 우선 왕이 머무는 왕성(王城)임을 의미하는  '재성(在城)'명 기와가 신라의 왕성인 경주 월성(月城)에서 다량 출토된 바 있다. 

또 황룡사(皇龍寺)를 필두로 영묘사(靈妙寺), 천주사(天柱寺), 사천왕사(四天王寺)처럼 경주 일대에 밀집된 신라시대 사찰터에서는 이들 사찰 이름이 적힌 명문 기와들이 집중적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팔각형건물터와 그 선대 원형건물터

 

이로 미뤄볼 때 이번 나정 유적 출토 기와 '生'자 또한 같은 맥락, 즉, 이들 기와가 사용될 곳을 표시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런 짐작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가정할 때 주목할 것이 현재의 나정(蘿井)에 대한 신라시대 명칭으로 蘿井과 함께 '나을'(奈乙)이 쓰였다는 점이다.

박혁거세 탄강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즉위년(기원전 57) 조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는 '奈乙'(나을)에서 태어났다고 하고 있다.

'蘿井'은 우물 '井'(정)자에서 엿보이듯이 순한문인데 반해 '奈乙'은 순 신라식 이름에 대한 표기라는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奈乙(나을)과 '生'은 어떤 관계일까? 

 

나정 건물터 흔적과 출토유물들.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되는 것과 같은 양상의 토기류가 다수 확인되는 점도 주목을 요한다.  

 

生은 흔히 그 우리말 새김이 '날'이며 지금도 '날 생', '나을 생'이라 한다. 이런 새김은 조선초에 이미 확인되고 있어 그 역사가 대단히 깊음을 알 수 있다.

나정 출토 기와 명문인 '生'이라는 글자가 그 기와가 쓰일(혹은 쓰인) 곳을  표시하는 부호라면, 生이 곧 '나을'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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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당南堂ㆍ도당都堂ㆍ명당明堂ㆍ신궁神宮, 그리고 나정蘿井

3회에 걸쳐 내가 몸담은 연합뉴스를 통해 2005년 8월에 송고한 같은 제목 기사는 마침 당시 박혁거세 탄강지인 경주 나정 발굴성과에 즈음해 이곳이 틀림없는 나정이요 신궁임을 확신하는 내용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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