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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을축년에서 경자년으로, 95년만의 대홍수

by 한량 taeshik.kim 2020. 8. 9.

 

범람으로 수몰한 남원 금지면 귀석리 마을

 

 

간지干支로는 을축乙丑이던 1925년 한반도는 홍수로 쑥대밭이었다.

이해 여름 한강 하류 일대 중부지방에는 두 차례 홍수가 있었으니, 1차는 7월 9~12일이었으며, 2차는 이 물이 채 빠지기도 전인 같은 달 15~19일에 일어났다. 

이해 7월 7일 필리핀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이 북상을 시작해 나흘만인 11일에는 서해안까지 진출했으니, 전진이 더딘 점이 피해를 키웠다. 태풍이 발생하기 전 6일부터는 꽤 많은 비를 쏟아부었으니, 장마전선에다가 태풍이 합세한 9~11일은 그야말로 메가톤급 위력을 발휘했다. 

10일 하루만 해도 강수량 기준 서울 196.6미리, 의정부 193.7미리를 필두로 남한강 유역보다는 북한강 유역 피해가 극심해 가평 170.0, 춘천 146.3, 홍천 144.6미리를 기록했다. 이런 여파는 그대로 한강 하류로 전달되어 한강이 범람했다. 

을축년 7월은 한달 내내 거의 홍수였던 셈이다. 

 

 

헤엄쳐 탈출하는 소떼. 8일 전남 구례지역에 내린 폭우로 침수된 축사를 탈출한 소떼 [독자 제공]

 

 

이후 한반도는 간헐적인 대홍수 기습에 시달리곤 했으니, 뇌리에 각인한 것으로 1959년 사라호 태풍이 인구에 회자하며,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한반도, 특히 경상도를 할퀸 일도 뺄 수 없다.

특히 후자의 위력은 내가 김천에서 확인했으니, 그 거대한 해발 1317미터 수도산 기슭을 보면 한강 정구 선생이 500년 전에 지목한 무흘구곡으로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 그 상흔은 지금도 고스란히 남았다. 

그런 대홍수라는 참극이 2020년 한반도에 재림했다.


을축년 대홍수



8월 초순을 지나 중순 문턱으로 들어서는 9일 새벽 현재, 이번 대홍수 피해와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백서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그 피해는 한반도 전역에 걸치고 더구나 그것이 당분간 더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운다. 

여름이 물난리로 대체한 2020년은 참말로 지긋지긋한 물난리가 할퀸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을축년 대홍수



물이 오래 머문 자리에서는 전염병이 창궐하는데, 가뜩이나 코로나 19에 기겁한 이 땅이 어떤 모습으로 갈지 모르겠다. 

이 대홍수 와중의 지인 증언 하나를 후세를 위해 채록한다. 전남 담양에 터전을 마련한 이영덕 호남문화재연구원장이 정리한 2020년 8월 8일 상황이다.

경자년 수마를 기록한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 4시경 점점 굵어지는 빗소리에 퍼붓는구나하고 이불 덮어쓴 채 창문만 바라봤다.

그러던 4시 30분경
쿵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물소리가 창문을 통해 들렸다.

직감.
뭔가 일어났다.

차고를 스스로 탈출해 뒤엉킨 차. 이영덕 촬영



서재 방문을 여는 순간
아수라장이었다.
쏟아지는 흙탕물이 마을길을 덮치고 있었다.
그리고 응당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차들이 안보였다.

본채로 뛰어가 자고 있는 식구들을 깨웠다.
일단 비상이니 옷을 입고 대기하라고.
그리고 각자 챙겨야 할 것들을 챙기라 했다. 고작 챙긴다는 것이 둘째는 고양이밖에 없다고.

그러다 날이 밝았다.
수마의 위력은 어둠속에서 더했다.
날이 밝자 보이는 상황은 헛웃음 밖에 나지 않았다.
아직 굵은 빗줄기.
이미 쓸고 간 나무와 꽃들. 차.
집 뒷마당과 가운데 데크에 쌓인 토사.
무엇부터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쑥대밭 마을. 이영덕 촬영



우선 집주변 토사부터 치우고 정신 가다듬자는 마님의 말씀에 치우다말다하면서
방송국에도 제보하고
포스팅도 올렸다.

비가 잦아드는 점심 즈음
동네 상황이 궁금했다.
마을회관 앞마당을 가득채운 암반과 뿌리채 뽑힌 큰 나무.
마을 어른들은 평생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고 다들 이구동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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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하니 어쩌하리요.
비가 잦아든 틈을 타서 원인이 무엇인지 위쪽 계곡으로 올라갔다.
산사태의 출발은 집 바로 위쪽에 있는 밭이었다.
그 위로는 대밭이라 산사태가 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리 높지 않는 산이라 큰 물 질일도 없었는데 결국 계곡에 쌓인 나무가 문제였다. 그 나무가 계곡에 댐을 만들고 순간 폭우로 불어난 댐이 터지면서 바위와 토사를 밀고 내려왔다.

오후.
면사무소에서 확인을 하러오고
일단 차부터 수리해야하기에 공업사에 연락을 했다. 서너시간 네대의 차를 아래로 옮기고 이제사 저녁식사를 마쳤다.

아직도 멍하기도 하고
믿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집안에 큰 피해없고
사람 안다쳤으니 괜찮다고 하는 마님의 말씀에 위안을 삼는다.

토사에 밀려 마당에서 수습한 내린 복령. 이영덕 촬영



아랫동네 마을은 이 정도의 비라면 농경지. 가옥이 침수되었을 건데.
실종사고도 들리고
아픈 소식도 들린다.

오늘 밤도 비 소식은 있는데
제발 그만 좀 내려라.

이것도 다 인간의 욕심이 빚은 재앙이다.
단순한 비가 아니다.

오늘 위안의 말씀들
일일이 답을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고맙습니다.


첨언하면 이영덕은 이날 아침 자기집 마당을 배회하는 가재를 발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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