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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남원 아막성에서 찾은 신라 저수지

by 한량 taeshik.kim 2020. 11. 17.

*** 조사단을 포함한 한국고고학 전반에서는 여러 용어로 난립하며 나름 구별하지만, 산성에서 드러나는 저런 이른바 집수集水시설은 모조리 池(지)다. 실제 각종 옛 지도나 그림에서도 그리 표시될 뿐이다. 저수지貯水池라는 표현도 우습기 짝이 없다. 池 자체가 저수貯水하는 시설인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표현인가? 다만 저런 물 채움 시설과 관련해서는 池와 井 정도만 구별했을 뿐이다. 요즘의 댐에 해당하는 말로는 堤(제) 堰(언) 정도가 있다. 다만 이곳에서는 조사단 의견을 존중해 '저수시설'이라는 표현을 임시방편으로 따른다.  

 

 

남원 고대 산성 '아막성'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굴
2020-11-17 13:39
고고학적 의미 큰 유물…국가지정문화재 등록 추진

 

남원 고대 산성 '아막성'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굴 | 연합뉴스

남원 고대 산성 '아막성'에서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굴, 백도인기자, 문화뉴스 (송고시간 2020-11-17 13:39)

www.yna.co.kr

 

이하는 발굴조사단인 군산대학교 가야문화연구소에서 발표한 보도자료 전문이다. 남원시청이 배포한 자료보다는 조금 상세하다. 

 

집수시설集水施設

 


남원 아막성(阿莫城)에서 신라 대형 집수시설 발견
-고고학으로 아막성(阿莫城) 실체 확인-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남원시(시장 이환주)와 군산대학교(총장 곽병선) 가야문화연구소장(곽장근)에서 발굴조사 중인 남원 아막성(阿莫城)에서 신라 때 조성된 초대형 집수시설이 발견 되었으며, 각종 토기류와 목제 유물, 동물유체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금번 발굴조사는 정부의 국정과제인‘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전라북도와 남원시의 지원을 받아 실시된 학술조사이다. 

 

집수시설 테두리를 따라 도수로導水路가 완연하다. 



남원 아막성은 백두대간의 고봉인 시리봉(777.7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상에 위치하며, 행정구역상 남원시 아영면 성리에 속한다. 아막성에서는 백두대간의 큰 고갯길인 복성이재와 치재가 한눈에 조망되며, 동쪽으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국가 사적 제542호)·월산리 고분군·청계리 고분군 등 가야의 수장층 무덤이 밀집되어 있는 남원시 아영면 일원이 내려 다 보인다.

아막성은 둘레 640m 내외의 테뫼식 석축 산성으로, 전북 동부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고대 산성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성벽은 기본적으로 내탁식으로 축조되었으며,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으로 정연하게 다듬은 석재를 사용하여 수평 줄쌓기 방식으로 쌓았다. 성곽 시설로는 문지 3개소와 2개소의 치가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집수시설과 계단식 건물대지가 남아있다.

 

집수시절 테두리를 따라 도수로導水路가 보인다. 



『삼국사기』에는 아막성에 관한 문헌 기록이 전하는데, 백제 무왕 3년(602년)과 무왕 17년(616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또는 모산성)을 공격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아막성은 20여 년 간 철산지인 운봉고원을 차지하기 위해 백제와 신라가 치열하게 각축을 벌였던 역사적 장소로서, 금번 발굴조사를 통해 그간 문헌사적으로 추정되었던 아막성 실체가 드러났다. 

금번 발굴조사는 산성 내 지형이 가장 낮은 북쪽 평탄 대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거의 온전하게 보존된 초대형 집수시설 존재가 파악되었다. 집수시설의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긴 장방형이며, 규모는 호안석축 상부를 기준으로 길이 9.5m, 폭 7.1m, 최대 깊이 2.5m 내외이다. 집수시설의 외측에 쌓은 호안석축은 단면이 계단형을 이루는데, 거친 돌의 한쪽 면을 맞추어 2단으로 쌓아 올렸다. 집수시설의 바닥면에는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20㎝ 내외의 점토를 깔았다.

 

집수시설 바닥과 호안석축護岸石築
집수시설 호안석축護岸石築
도수로導水路
도수로導水路



호안석축의 외곽에서는 도수로가 확인되었다. 도수로는 집수시설 내부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기 위한 물길로서 호안 석축 외곽을 따라 구덩이 파고 가장자리에 석축을 시설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도수로 외측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놓은 나무 기둥이 확인되었는데, 난간 또는 울타리 시설로 판단된다.

 

도수로導水路

 

도수로導水路 말뚝



집수시설의 내부에서는 삼국~나말여초기에 이루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 토기류의 경우, 대다수가 6세기 중후반~7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신라 토기로서 아막성의 축조·운영 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는데, 기록상 등장하는 아막성의 운영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특히 출토된 유물 중 칠 원료가 담겨져 있는 그릇이 출토되어 주목되는데,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이는 남원칠기 문화의 전통과 역사성을 복원할 수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집수시설 出土 신라토기新羅土器
집수시설 出土 가야토기伽倻土器
집수시설 出土 제철製鐵 부산물
집수정 출토 성격미상 ? 토기 



이 외에 목제 유물과 동물 유체가 상당수 출토되었다. 목제 유물의 경우, 문손잡이, 말뚝, 목제 빗, 방망이 등 그 종류가 다양하며, 글씨가 새겨진 목간도 일부 확인되었다. 또한 길이 80㎝ 내외의 목검이 온전한 형태로 출토되어 큰 주목을 끈다. 동물 유체는 곰, 말, 소, 개, 노루, 두루미, 자라 등 가축과 야생동물이 모두 확인되고 있어, 산성이 운영될 당시 군사들의 생활방식은 물론, 식생 환경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특히 곰의 경우, 신라 월성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삼국사기』기록에 신라인들이 곰의 가죽으로 장군 깃발을 만들었다는 기록에 등장하고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집수시설 출토 동물유체뼈



한편 신라 유물이 이외에 가야토기와 백제토기도 일부 출토되었다. 가야토기의 경우, 신라의 축성 이전에 운봉고원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있던 발전했던 가야 세력과의 연관성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 토기는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아막성의 역사성을 복원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여겨진다.

 

목기류木器類

 

목간

 

목간

 

 

***

 

이상이 보도자료 전문이어니와 상술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이번 조사는 전라북도기념물 제38호인 아막성을 대상으로 2019년 시굴조사 결과 확인한 집수시설과 성벽, 그리고 산성 내 평탄대지에 대한 정밀발굴조사 통해 산성을 처음 쌓은 시기와 그것이 운영된 시기를 파악하는 한편, 산성 정비·보존에 대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고자 실시한 것으로, 이를 위해 남원시 아영면 성리 산83 일대 6천600㎡를 대상으로 삼았으니, 이 중 발굴조사 1천000㎡, 시굴조사 5천600㎡로 구성된다. 조사기간은 2020. 01. 03~2020. 12. 18(실조사 97일)이다. 조사단장은 곽장근, 책임조사연구원은 조명일이며, 유영춘·신지희·유수빈이 실조사원이다. 

 

아막성 조사 내역은 다음과 같다. 

 

연도

조사명

조사성과

2018

남원 아막성 정밀지표조사

산성 전체규모 및 주요시설 파악 및 측량 실시

2019

남원 아막성 시굴조사

산성 내 북쪽 평탄지 시굴조사, 집수시설 존재 확인

2020

남원 아막성 정밀발굴조사

집수시설 발굴조사, 금번 발굴조사

 

조사지점

 

아막성 혹은 모산성 기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3년(602년) 8월 “왕이 출병하여 신라 아막성阿莫城을 포위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24년(602년) 8월 “백제가 아막성을 공격해 왕이 장수와 사졸로 하여금 맞서 싸우게 하여 크게 쳐부수었으나 귀산(貴山)과 추항(箒項)이 전사하였다.”
○ 삼국사기 열전, 진평왕 24년(602년) 8월 “백제가 크게 군사를 일으켜 아막성을 포위하였다. 진평왕이 장군 파진간波珍干 건품乾品·무리굴武梨屈·이리벌伊梨伐, 급간級干 무은武殷·비리야比梨耶 등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그것을 막게 하였다. 귀산과 추항은 함께 소감少監으로 나갔다.”
○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왕 17년(616년) 10월 “신라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했다.”
○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평왕 삼십팔년(616년) 10월조 “백제가 모산성母山城을 공격했다.”

아막성 현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남원 아막, 장수군 번암면과 경계를 이루는 봉화산(해발 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위치, 산줄기 정상부(해발 697m)와 주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으로 표고가 220m 안팎, 아영분지 조망 및 가야계 수장층 분묘유적인 ‘남원 월산리’,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등 인접
○ 산성 남쪽 아영분지로 들어서기 위한 주요 교통로인 ‘복성이재’ 위치, 북쪽에는 고대 통신유적인 ‘남원 봉화산 봉수’ 자리
○ 산성 둘레는 약 640m 내외로 평면형태가 동-서 폭 180m, 남-북 165m 안팎인 방형에 가까우나 대체로 북쪽 폭이 넓고 남쪽이 좁음
○ 석재로 성벽 축조, 대체로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되었으나 일부 구간은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된 것으로 추정, 다듬은 성돌은 좁은 면이 외측에 드러나도록 축조, 구간마다 사용한 성돌 형태가 약간 달라 조성 주체 및 시기가 차이가 있을 가능성이 있음, 북쪽 성벽 중 일부 구간은 현대에 복원
○ 문지, 집수시설, 치 등이 존재, 북문지에서 남쪽으로 7m가량 떨어진 곳에서 오목한 지형 확인, 주변에 물이 스며드는 것으로 보아 집수시설 존재 추정, 산성 내 평탄지 건물지 존재 가능성 높음
○ 금번 조사는 2019년 시굴조사에서 드러난 집수시설과 성벽(동·북쪽)에 대해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유구의 잔존현황 및 구조, 조성 및 운영시기를 파악하고 산성 내 평탄대지에 대해 시굴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지 등 부속시설의 현황 파악에 목적이 있음 
○ 집수시설이 북쪽 평탄지에 대해 피트 구획 후 정밀 발굴조사 실시,‘십(十)’자 기준둑 구획 후 하강 조사 실시, 중첩된 층이 확인될 경우 토층조사를 실시하고 각 층에서 출토되는 유물 등을 면밀히 수습하여 유적의 조성 및 운영시기 등 파악
○ 북성벽에 대한 시굴조사 실시, 성벽의 축조방법 및 구조 파악, 산성 내 설정된 그리드 기준으로 폭 2m, 길이 16m의 트렌치 조사 실시, 건물지 등 유구의 존재 여부 파악 

 

아막성

 

발굴조사 내용을 부문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집수시설 발굴조사
○ 북쪽 평탄지에 위치, 남쪽 경사면에서 흐르는 물이 집수시설에 모여들기에 용이한 위치, 물의 흐름을 고려한 집수시설의 배치, 집수시설 서쪽 또 다른 집수시설 존재 가능성
○ 금번 발굴조사를 통해 대형 집수시설 1기와 도수로, 목주열의 잔존현황과 구조 확인
○ 집수시설 평면형태 동-서로 긴 장방형, 내측기준 동-서 길이 9.5m, 남-북 너비 7.1m, 잔존높이 2.5m 내외
○ 호안석축 상단면 석축 폭 1.8m 내외, 내측과 외측 모두 정연한 면을 이룸, 외측으로 갈수록 계단처럼 높이 쌓음, 낙수차를 두어 흘러드는 물로부터 호안석축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으로 추정
○ 호안석축 부정형 할석의 면을 맞추어 계단식으로 축조, 두개의 단을 두어 붕괴 등 방지, 바닥면에서 1.3m 지점까지 수직에 가깝게 축조 후 0.5m 가량 뒤로 물려쌓아 단을 둠
○ 모서리 서로 맞물림, 호안석축 네 벽은 동시 축조된 것으로 판단
○ 바닥면 풍화암반층을 평평하게 정지한 후 별다른 시설 없이 바로 사용
○ 호안석축 후면에 점토를 채워 누수를 방지하고 외부에서 이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음
○ 집수시설 내부 4층을 이루며 점토 수평퇴적, 자연에 의한 퇴적양상 판단, 호안석축과 가까운 곳에서 석재의 붕괴양상 확인
○ 집수시설 내부에서 노벽편 및 슬래그(鐵滓, Slag), 목제유물, 동물유체, 신라 및 가야토기편 등 다양한 유물 출토
○ 목제유물로 묵서(墨書)가 쓰인 목간·문 손잡이·말뚝·목제 빗 등 출토, 곰·소·자라·두루미·개뼈 등 다양한 종류의 동물유체를 비롯하여 산성 내 철 생산의 증거물인 슬래그와 노벽편 출토, 곰 유체는 경주 월성 등 신라유적에서 주로 출토
○ 도수로 집수시설 상단 외측에서 1.5∼2.0m 내외의 거리를 두고 배치, 북쪽 제외한 모든 방향 확인, 서쪽 후대의 훼손으로 인해 일부 잔존
○ 도수로 내측 기준 폭 0.4∼0.5m 내외, 집수시설 호안석축 후면에 채운 점토층을 일부 파낸 후 0.2m 내외의 부정형 할석을 이용하여 축조, 들어오는 물과 넘치는 물을 일정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기능으로 판단
○ 목주열 동쪽과 남쪽에서 9개 확인, 집수시설 호안석축 후면에 채워진 점토층을 파낸 후 축조, 집수시설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 등과 관련된 구조물로 추정, 집수시설 내부에서 출토된 목제유물과 일부 관련



2) 성벽 발굴조사 
○ 아막성 성벽의 구조와 축조방법을 파악하기 위해 남쪽 성벽에 대해 발굴조사 실시
○ 남쪽 성벽은 내탁식(內托式)으로 축조, 자연 경사면을 다듬은 후 외측면에 벽체 축조
○ 성벽 기저부 1∼2단 잔존, 세장방형 성돌 사용, 부정형 석재를 이용한 뒷채움 노출
○ 동쪽 성벽의 축조방법을 파악하기 위한 발굴조사 예정

3) 평탄지 시굴조사  
○ 산성 내 주요 부속시설의 존재 및 분포현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 폭 2m 트렌치를 등고선과 직교하도록 구획 후 시굴조사 실시 
○ 트렌치 내부 부속시설로 추정되는 석렬, 소토 등 유구와 관련된 흔적 확인
○ 산성 내 중앙 평탄지 건물지의 기단으로 추정되는 대형 석재 확인

 

 

조사성과 및 조사단 의견

 

○ 『三國史記』에 남원 아막성은 백제 무왕 3년(602년)에 백제와 신라 간의 격전이 벌어졌던 산성으로 이 지역의 역사·문화를 복원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손꼽힘, 산성 주변에는 아영분지의 관문인 ‘복성이재’를 비롯하여 이 지역의 가야 고분군인 ‘남원 월산리 고분군’과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이 인접하여 역사적 가치 탁월

○ 금번 발굴조사를 통해 1기의 대형 집수시설의 잔존현황과 구조, 운영시기 등이 파악, 주변에서 도수로·목주열 등 확인, 잔존상태가 양호하여 향후 삼국시대 집수시설의 구조를 복원하는 데 값진 자료 제공

○ 집수시설 내부에서 출토된 토기는 신라토기가 주를 이루며, 가야토기와 백제토기가 함께 출토, 토기를 근거로 금번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집수시설은 6세기 중반 무렵을 중심으로 운영된 것으로 판단, 문헌기록 상에 등장하는 아막성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로 판단

○ 신라와 가야, 백제토기가 모두 출토된 바, 향후 운봉고원의 역학관계 및 산성의 운영주체, 당시의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로 판단

○ 산성에서 출토된 목제유물과 동물유체, 철 생산 부산물 등은 산성에서 쉽게 출토되지 않는 희소한 유물, 산성 내에서 다양한 종류의 동물유체가 발견된 이례적인 자료, 철 생산 부산물은 운봉고원의 철 생산 공정 및 시기를 밝힐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

○ 금번 시굴조사에서 드러난 산성 내 유구에 대해 향후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정확한 성격 및 잔존현황, 운영시기 등이 파악되어야 함,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산성의 역사성이 보다 명확하게 조명되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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