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미가 동아시아 고대의 무덤에서 꽤 많은 수량으로 출토한다. 앞 사진은 공주 송산리 왕 부부를 합장한 공주 송산리 무령왕릉 현실玄室 중에서도 왕비를 묻은 쪽 발치에서 나왔다.
다리미라고 하면 대체로 여성이 옷을 다리는데 사용하는 도구라 하지만, 그런 까닭에 여성이 전유專有하는 기물器物이라 하지만, 의외로 남성을 묻은 곳에서도 적지 않게 출토된다는 점이 이채롭다. 이는 비단 무령왕릉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까지 고대 동아시아 무덤 매장 패턴에서 공통으로 발견된다.
그 출토 위치를 보면 피장자被葬者의 머리 아니면 발치 쪽이다.
무령왕릉 내부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가? 아니, 질문을 바꿔본다. 왜 다리미를 무덤에 피장자와 더불어 매장하는가?
나는 이를 북두칠성北斗七星으로 본다. 요컨대 칠성판七星版이거나, 그 대용품으로 본다.
동아시아 세계에서는 사람이 죽은 일을 "칠성판을 지고 간다"는 말로 표현하곤 하듯이, 북두칠성은 죽음과 밀접해, 죽음을 관장하는 천상의 성신星神이었다. 사람을 매장하면서 칠성판을 같이 묻어준 이유가 이에서 말미암는다.
무령왕릉 왕과 왕비 매장 위치
북두칠성 별자리 그림을 새긴 칠성판은 주로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거니와, 이에서도 거의 패턴화한 법칙이 발견되거니와, 죽은 사람이 그 칠성판을 등에다 지는 형태라는 점이다. 그런 까닭에 칠성판은 목관 바닥에서 깐 상태로 발견된다. 이를 통해 죽은 사람이 칠성판을 "등에다가" 지고 간다는 말을 구상화한 것이다.
내 기억에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다리미 출토 양상을 정리한 고전적인 논문이 대전보건대학 박보현 선생에게서 대략 20년 전에 나왔다. 이후에도 적지 않은 다리미 출토 사례가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보고됐다.
청동다리미, 청동위두靑銅熨斗가 곧 북두칠성의 상징이요, 칠성판의 대용이라는 내 주장을 방증하는 다른 곳으로 1988년 영남대박물관이 발굴조사한 경산 조영동 E 2-1호분이라는 삼국시대 무덤이 있다. 환두대도가 나온 걸로 보아 이곳에 묻힌 이는 성별로는 남자다.
축조연대는 5세기 후반으로 봤다. 이곳에서도 청동다리미 1점이 출토됐다. 한데 그 위치가 묘하다.
피장자 기준으로 머리에서 왼편으로 조금 떨어진 지점에, 그것도 엎은 상태에서 청동다리미가 발견됐다. 죽어서 머리카락 다리라고 묻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고고학은 왜 청동다리미인가를 묻지 않았다. 묻은 적이 없다. 묻지 않으니 의문이 풀리겠는가?
그것이 북두칠성, 혹은 칠성판이라는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것이 출토된 곳을 단순 나열하면서, "매우 진귀한 물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밑도끝도 없는 기술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아는 고고학은 왜? 왜? 왜?를 묻는 학문이지, 이를 통해 그것을 남긴 자들의 사고체계를 파고 들어가는 학문이지, 여기서 뭐가 나오고, 저기서 뭐가 나왔으며, 그래서 귀중한 물품이다, 혹은 흔한 물품이다를 판정하는 학문은 아니다.
한국 고고학은 나열羅列(descriptive)에서 벗어나 왜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분석적(Exploratory) 연구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토기 그림이나, 무덤 내부 구조 그림이나 난수표처럼 잔뜩 그려놓고는, 변화 양상이 어떠하고, 어떤 양식이 어떤 시대에 속하니 하는 것으로 만족한단 말인가?
토기 그림, 무덤 그림 그만 그려라. 지겹다!
*** 이 다리미 문제는 심각히 생각했다.
그리하여 별도 논고를 이른바 학술전문지에 제출할까도 생각했지만, 졸저 《직설 무령왕릉》(메디치미디어, 2016)에서 문제만 제기하는 것으로 그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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