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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Reading of History and Histories

내가 다 풀어주면, 새로운 왕은 무엇을 할 것인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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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양 史를 읽을 적마다 고려 성종이 죽음에 임해 취한 행동을 보고는 찬탄을 거듭해 마지 않으면서 지도자는 자고로 이러해야 한다는 전범으로 삼는다. 그의 죽음에 즈음한 《고려사절요》 언급이다. 

 

(997년) 겨울 10월 무오일에 왕이 병환이 매우 위독해지자 조카인 개령군開寧君 송誦을 불러 왕위를 전하고는 내천왕사內天王寺로 옮겨갔다. 평장사 왕융王融이 사면령을 반포하도록 청하니, 왕이 말했다.

 

“죽고 사는 일은 하늘에 달렸는데, 어찌 죄 있는 자를 놓아 주어 부정하게 목숨을 연장하려 하기까지 하겠느냐. 더구나 나를 이을 사람은 무엇으로 새로운 은전을 펼 수 있으랴"

 

그러고는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셨다.

 

당시에는 왕이 병들면 죄수를 사면하는 전통이 있었다. 이를 통해 복을 구하고자 하는 관습이었다. 하지만 성종은 이를 거부한다.  내가 사면령을 내려 죄수를 다 석방해 버리면 내 뒤에 즉위하는 새로운 왕은 무엇으로써 신민들에게 은혜를 베풀겠냐는 말이었다.

 

 

 

삼가고 삼갈지어다. 나는 이런 지도자를 보고 싶노라. 내가 아니면 지구가 망하고 우주가 망하며 대한민국이 망한다 해 난리를 피워대면서 거리에 나서 서명이나 해제끼는 푸른기와집 누나여. 성종을 볼지니라. 

 

注)

 

애초 이 글은 노무현 정부 말기에 노 대통령이 갖은 비난 무릅쓰고서 정치인을 대거 사면할 때 쓴 초고를 다시금 박근혜시대에 맞게 재가공한 것이다. 

 

사면....일반사면이 있고 특별사면이 있다. 어느 것이나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 권한이다. 사면권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노 대통령에게는 아마도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 굳은 일 내가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방식이 옳다고 보지 않았다. 

 

성종이 죽자 그의 지명에 따라 후계자가 된 개령군開寧君 왕송王誦이 고려 7대 왕인 목종穆宗이다. 아버지는 경종景宗이며 어머니는 헌애왕후獻哀王后라, 아들이 즉위한 다음에는 바로 천추태후千秋太后라는 존호를 받은 여인이다. 

 

죽어 그가 묻힌 무덤은 처음에는 공릉恭陵이라 하다가 나중에 의릉義陵으로 바뀌었다. 997년 10월 27일에 즉위해 그런대로 다스리다가 이른바 강조의 정변을 만나 1009년 2월 3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그에게 왕위를 물려준 성종은 아버지가 대종이니 왕건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선의태후다. 풀네임은 왕치王治. 961년 1월 15일에 태어난 왕치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어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사촌형인 경종은 헌애왕후를 왕비로 맞았으니, 그가 바로 성종의 동생이다. 경종이 승하할 적에 두 살 된 아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려 대타로 오른 것이다. 이럴 때 보통은 자기 자식들로 후일을 기약하게 되는데 성종은 조카를 아들처럼 돌보고, 결국에는 그에게 왕위를 이어주니 그가 바로 목종이다. 물론 성종한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들이 없었다. 


성종은 21살 때인 981년 8월 13일 즉위해 왕노릇 16년 만인 997년 11월 29일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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