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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좀 독특한 면이 있어 지들은 요遼나 금金에서 책봉을 받았지만, 그 내부에서는 또 하나의 조공책봉 체계를 유지했으니, 탐라 울릉도, 그리고 금 건국 이전 여진에 대해서는 시종일관해서 종주국을 자처했다.
종주국이 일방적인 공물의 받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쪽에서 하나를 가져오면 두 개를 줘야 하는 것이 조공 책봉 체계다.
또 하나 유의할 점은 요 금에 대해 조공하니, 중국 대륙 남쪽 송宋과의 관계가 참말로 오묘하다.
이게 조공 책봉 관계도 아니면서 긴 것 같은 묘한 관계.
양국 국교는 나중에야 성립하는데, 송이건 고려건 북쪽 요를 의식하지 않을 수없었다.
송 역시 요에 신속臣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송과 고려 교유는 비외교의 관계가 훨씬 더 활발한 이상한 시스템이 정착한다.
줄기차게 송나라 상단이 개경으로 밀어닥친다.
고려와 이들 인접 왕조 혹은 종족 사이에 활발하게 품목이 교유하는 것이 동물이다. 말과 소, 그리고 나귀와 노새는 수시로 오갔다.
고려시대는 인종人種이 대규모로 혼효하는 시대이면서 동물이 국제 교배하는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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