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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을 논하면서 개중 하나로 박제가를 언급하면서
그가 수레 사용을 적극 주창한 점을 높이 평가하지만
이는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다.
한반도 사람들이 수레를 몰라 수레를 사용하지 않은 것 아니다.
산이 전국토 7할이었기 때문이다
.
수레를 사용하려면
첫째. 지금의 고속도로 같은 도로가 구비되어야 하며
둘째, 그런 도로는 높낮이 차이가 현격히 낮아야 하니
셋째, 그런 까닭에 소백이며 태백이며 차령산맥 등지는 터널을 뚫어야 했다.
이것 없이 수레 사용 운운은 다 개소리라, 설혹 수레가 있다한들 도로를 만들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으리리오?
박제가의 꿈은 그 200년 뒤에 이룩하게 되니
첫째, 일본넘들이니, 그들이 만든 경인선이며 경부선하는 철도가 그것이고
둘째, 박정희니, 1970년 개통한 경부고속도로가 그것이다.
이런 제반 사정 고려 없이 그가 어떠한 소리 했다 해서 그를 선각자였느니 하면서 운운해서는 결코 안된다.
요즘 한국사회에서도 전후사정 고려치 아니하고 이상론만 펴는 자들이 많으니 이런 이들을 입만 살았다 한다.
(2017. 01. 26)
***
그의 수레론은 북학파 아이콘처럼 선전하지만, 당시 조선 사람들이 수레가 편한 줄 몰아서 사용 안하거나 못한 게 아니다.
그의 수레론은 북학의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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