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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노비사역을 감추니 정체가 모호해지는 율곡의 경장론

by 신동훈 識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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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은 조광조 같은 완고한 도학 지치주의론자가 아니다. 

그 역시 지치주의를 이상적 정치로 보기는 하지만 

율곡은 매우 명민한 사람이며 

남아 있는 그의 대화록을 보면 극히 현실적으로서 

추상적인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스스로 녹사를 했다고 자폄할 만큼

정치 실무경력이 많아 당시 세상에 널렸던 

입에 발린 말로 지치주의를 옹호하던 그런 류의 유학자들과는 결을 달리 하던 사람이다. 

율곡의 경장론이 있다. 

활시위를 다시 당겨 조이듯이 16세기 후반의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앟으면 이 나라는 조만간 망한다고 극언했다. 

이 율곡의 경장론의 실체를 보면

현재 나와 있는 여러 연구에서는 매우 모호하게 기술되어

일견해서 조광조의 지치주의와 별 차이가 없는 듯 적어 놓았는데, 

실제로 율곡은 그렇게 모호한 말이나 하면서 시간 때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율곡이 개혁해야 하고 경장해야 한다는 그 대상은 분명한 실체가 있었다. 

필자가 보기엔 율곡의 경장의 대상은 바로 노비사역에 의해 

군역을 지울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문제였을 것이라고 본다.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일하다가 쓰러져 회복 못하고 세상을 뜬 그로서는 

군역을 지울 사람이 나라 안에 없다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율곡이 이야기한 경장의 문제는 당시 사회에 만연해 있었던 

노비사역의 문제, 그리고 그로 인한 군액의 감소 

이 부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보면 그의 "십만양병설"로 이해가 가는 것이다. 

군역을 지울 사람이 있어야 십만 양병도 될 것 아니겠는가? 

쉽게 말해 군역을 진 소농중심으로 향촌이 재편되어야 십만양병이고 나발이고 되는 것이니 

율곡이 개혁하고자 한 타겟은 노비사역에 의한 향촌질서

이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대로 조선시대에 만연한 노비사역의 문제를 명확히 쓰지 않고 

논의의 주요한 대상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놓지를 않으니

율곡의 경장론에 대한 해석이 자꾸 추상적 지치주의처럼 오해를 받는 것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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