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43)
늦여름 즉흥시(季夏卽事)
송 조보지(晁補之) / 김영문 選譯評
붉은 접시꽃 비를 맞아
꽃대 길게 자라고
푸른 대추 바람 없어도
가지 무겁게 누르네
주춧돌 축축하니
사람도 땀에 젖고
찌는 숲 속 매미들
뜨겁게 울어대네
紅葵有雨長穗, 靑棗無風壓枝. 濕礎人沾汗際, 蒸林蟬烈號時.
늦여름 찌는 듯한 더위를 읊은 6언절구다. 이 시만 읽고 있어도 온몸에 곧바로 땀이 솟아오를 듯하다. 무덥고 습기 찬 늦더위를 실감나게 묘사했다. 대학에서 중국문학사를 강의할 때 이 시의 작자가 활약하는 북송 시기에 이르면 매우 곤혹스러웠다. 이 작자의 우리말 발음 때문이다. ‘조보지(晁補之)’는 황정견(黃庭堅), 장뢰(張耒),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에 속하므로 언급하지 않을 수도 없다. 소문사학사란 북송의 대문호 소식 문하의 유명한 네 문인이다. 가능한 한 무미건조하게 이름을 언급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미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이것뿐이 아니다. 조금 뒤 남송 시기에 이르면 ‘주자지(周紫芝)’가 등장한다. 이 또한 난처하기는 마찬가지다. 주자지는 남송 초기 시(詩)와 사(詞)에 모두 뛰어난 문학가였으나 당시의 간신 진회(秦檜)에게 아첨하며 영화를 누렸다. 중국 발음으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지만 우리 발음으로 읽었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모두가 흘러가버린 지난날의 기억 속 작은 편린이다. 지금 중국문학사를 강의하는 분들은 어떻게 대처하는지 궁금하다. 하긴 뭐 중국문학사란 강좌조차 사라진 대학이 있다고 하니 나의 궁금증은 정말 구석기시대의 화석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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