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144)
장난삼아 두보에게 주다(戱贈杜甫)
당 이백 / 김영문 選譯評
반과산 꼭대기에서
두보를 만나는데
머리에는 삿갓 쓰고
태양은 중천이네
지난 번 이별 후로
너무 말랐네 그려
이전부터 시 짓느라
고심했기 때문이오.
飯顆山頭逢杜甫, 頂戴笠子日卓午. 借問別來太瘦生, 總爲從前作詩苦.
중국 시사(詩史)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이백과 두보다. 중국문학사에서 이백은 시선(詩仙), 두보는 시성(詩聖)으로 일컬어진다. 특히 송나라 이후로 이·두(李·杜) 우열을 두고 수많은 논란이 벌어졌고, 그 논란은 지금까지도 지속 중이다. 어쩌면 시작과 끝, 안과 밖이 없는 뫼비우스 띠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성당 시대에 두 사람 관계는 어땠을까? 언뜻 보기에 시풍이 다른 만큼 서로 적대적인 라이벌이었을 듯 싶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이로 보면 이백이 두보보다 열한 살 많다. 이백이 두보 큰 형님뻘쯤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은 낙양(洛陽)에서 처음 만난 이후 나이를 초월한 친구(忘年之交)가 되었다. 이후 두 사람은 친분을 지속하며 양(梁) 땅 즉 지금의 카이펑(開封) 지역과 제로(齊魯) 땅 즉 지금의 산둥(山東) 지역을 함께 여행하기도 하면서 매우 친밀한 우정을 과시했다. 시풍으로 보면 이백이 호방하고 낭만적이지만 두보는 침착하고 현실적이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어떻게 이처럼 상이한 시풍을 형성했을까? 아주 상식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인간은 백이면 백 모두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불우한 현실에 대응할 때 그것을 완전히 초월하여 신선이 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런 현실을 떠나지 못하고 그 슬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사람도 있다. 시풍으로 볼 때 이건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개성과 취향의 문제다. 이 시를 두고서도 호사가들은 흔히 이백이 두보를 디스한(조롱한) 예로 거론하곤 하지만 시를 찬찬히 읽어보면 오히려 막역한 벗 사이 친밀한 우스개임을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이백과 두보가 역대로 벌어진 이·두우열론(李·杜優劣論)을 저승에서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려 돼지 눈에는 돼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뵈는 법이지’라고 할까? 아! 이건 무학대사의 어록이구나. 하여튼 슬프게도 이 두 대시인은 이 시에 나오는 장안(長安) 반과산(飯顆山)에서 만난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인생의 만남과 이별이 으레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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