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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당쟁의 반복을 경계한다

by 초야잠필 202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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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예민한 시기라 간단하게 쓴다. 

현재 우리나라 정국을 보면

조선시대 당쟁의 전개양상과 매우 닮아 있다. 

우리 선입견으로는 당쟁이라는 것이 

밑도끝도 없는 모함과 억지, 공리공론으로 전개되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역사를 보면 그렇지 않다. 

당쟁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예송을 보자. 

예송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모두 경전에 근거가 있는 이야기로, 

상대에 대한 반박은 모두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이루어졌다. 

매우 정밀하며 문헌에 대해 낱낱이 고찰하고 관련 근거를 섭렵하여 탐색하며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예송이 왜 일어났는가. 

그 문헌적 근거가 된 원전이라는 것 자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이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런 태생적 모호함의 토대에 당파적 이해가 결합하면

그 자체 몇백 년에 걸친 당쟁으로 이어지며

마지막은 공동체 자체의 파탄적 종말로 이어진다. 

조선후기 반복된 많은 반정과 환국, 의리는 모두 대단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 

이걸 공리공론 때문에 망했다고 봐서는 당시 사실을 잘 못 읽는 것이다. 

조선은 공리공론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고, 

대의명분 때문에 망한 것이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중세에 모두 있었다고 에코가 이야기 했다던가.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현상도 사실 조선시대에 다 있었다. 

북한의 몰락도 조선의 역사에서 이미 나타났었으며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혼란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역사는 반복되지 않도록 다 함께 노력 하는 것이 옳겠다. 


송시열과 함께 예송의 한 쪽 기둥을 이룬 미수 허목. 조선시대의 예송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논리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렇게 논리적으로 이루어진 예송과 당쟁은 조선왕조의 몰락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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