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서원이 난립하게 된 이유로,
사족들이 향교의 교육에 불만이 있고,
훌륭한 스승 밑에서 성리학을 도야 할 만한 공간을 원해서
성립하고 어쩌고 이렇게 알듯모를 듯한 이유를 대지만,
집에서 공부를 안하는 애가 독서실 간다고 하겠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원군이 서원 철폐 때 통렬히 비판한 바 있으니,
서원 철폐를 도로 물려 달라는 향촌 사족들 요청에 대원군은,
너네는 향교에서는 공부 못하는가? 라고 공박한 바, 통렬한 비판이라 하겠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향교에서 양반들이 박차고 나가 서원으로 모인 것은
향교에 모여든 서자들 때문이었다.
이들이 바로 17세기 초반, 각종 문헌에 "교생"이라고만 직역이 적히는 이들로,
양반들이 "놀고 먹으며 향교에 등록해서 군역 빠질려는 놈들"이라고 이야기하면 바로 이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흔히 한국학계에서, "교생", "향촌 중인", "서얼", "상층 군역자로 군역을 회피하거나 면제 받은 자" 등으로 지칭하는 이들은 실은 같은 사람들로,
향촌 사회에서 서자를 중심으로 형성된 양반들의 2부 리그,
양반과 평민의 중간에 위치하며 양반들이 기분 나쁘면 발로 걷어차는 이들-.
바로 중인들, 서자들이 그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은 평민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모두 양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대대로 유학호를 달고 막대한 노비를 소유한 부자들인 양반 proper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양반들이 볼 때 이들은 "군역을 부담해야 할 놈들이 양반이라 자칭하며 향교에 등록하여 무단히 군역을 빠지고"
"과거는 볼 생각도 실력도 없는 놈들이 향교에서 시간이나 때우는 놈들"이라,
얘들은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서 향교에서 내쳐야 한다고 하니,
향교에서 정기적으로 고과해서 떨어지면 향교 교생의 지위를 박탈하고 군역으로 편제되었으니,
이들이 바로 그 향촌 사회의 중인-서자들인 것이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내쳤는데도 서자들이 여전히 향교에 남아서 꿈틀대니고 있으니,
그것을 보기 싫다고 박차고 나가 따로 집을 차린 것이 서원이 되겠다.
서원?
엄청나게들 포장하고 있지만, 대원군 말을 다시 곰씹어보자.
"너희는 향교에서는 공부를 못하는가?"
집에서는 공부 안 된다고 독서실 끊어달라는 소위 유림들에 대해 대원군은 이렇게 통렬히 찔러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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