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란 이후 향교가 서자들의 소굴이 되자
(서얼이라고 쓰지 않는 이유는 노비로 편제된 얼자들이 향교에 교생이 되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서자라고 좀 더 좁혀 쓰는 것이 옳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인조 대 이후 정기적으로 시험을 봐서
떨어지는 이들은 향교 교생직을 박탈하고 군적에 편입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나오는 이야기가 당시
"향교 교생들은 글자 못 읽는 이들도 있었다"
하는 양반 측 프로파갠다에 한국학계가 무심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는 바,
솔직히 글자 못 읽고 구두도 못 떼는 이들이야 서자들만 있었겠는가?
양반 자제들은 이 고과에서 빼 놔서 그렇지 이들도 시험 보면 떨어질 놈이 수두룩 했으리라.
일단 무과 급제로 방향을 튼 양반 자제들 같은 경우,
제대로 구두 떼고 사서 삼경을 줄줄 외었을 이가 몇이나 되었으리라 보는가.
요즘 아무리 공부를 가르치고 학원을 보내도 영어를 못하는 애들은 못하는 것이다.
양반 자제라고 글자 다 읽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따라서 적어도 21세기 학계라면 이런 양반들 프로파간다에 농락되어서는 안된다.
서자들이 주축이 된 교생들을 따로 시험을 봐서 떨어지면 쫒아내게 되었으니,
여기서 쫒겨난 이들이야 말로 당장 없는 살림에 (노비 대여섯 데리고 자기도 농사짓는 살림에)
군포 두필을 어찌 내겠는가?
그리고 이 시점(17세기)까지만 해도 양반들 족보에는 서자를 이름을 올리지 않거나,
아니면 애써 올려주더라도 이름 앞에는 서자라고 떡 박아 놓는 시절이었다.
서자들이 볼 때는 족보에 이렇게 올라 있으니 회피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큰 한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필사적으로 여기서 벗어나고자 나오는 것이 바로 "나는 선현의 자식이요"라는 것이 되겠다.
조선시대 문서 중에는 묘한 문서들이 있는 바
누구누구 선현의 후손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군역에서 빼주라는 관급 문서들이 되겠다.
언젠가 한 번 쓴 것 같지만 이런 문서들은 누구누구 선현의 후손,
조선도 아닌 고려시대 개국공신 장군의 후손,
심지어는 기자의 후손까지 있다.
이 문서들을 보면 흥미로운 것이 "이 사람은 사문에 미친 덕이 크니, 그 후손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설사 천역에 떨어진 이라도 모두 군역을 빼주라"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방점을 찍어야 하는 부분은 "천역賤役"이 되겠다.
양반들은 군역에 원래 빠지기 때문에 이런 문서는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군역에 편제되어야 할 핀치에 몰린 이들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문서로서,
대부분은 17세기 향교의 고과에서 낙제하여 군역에 편제되어
군포를 꼼짝없이 물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서자 자손들이 필요했던 문서였음이 틀림없겠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왜냐. 정작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이런 관급문서 발급해 주지 말라는 어명이 계속 내려가는데도,
이런 문서가 시도때도 없이 출현하는 것은 반드시 이 문서에 대한 민간의 수요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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