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대표하는 상징물 중의 하나가 사무라이와 그 정신이 아닐까.
그래서 스타워즈에도 사무라이 장수를 벤치마킹한 다스베이더가 뛰어 다니고,
동경국립박물관에는 전시실 좋은 구석에 니뽄도가 줄줄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 이미지는 사실 많은 부분이 에도시대에 창작되었다.
에도시대 이전, 가마쿠라, 무로마치, 그리고 전국시대 무장은
우리가 아는 사무라이들과는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헤이케 모노가타리와 태평기, 그리고 전국시대 군담소설류를 보면 그 차이가 많이 나타나는데
우선 겐페이 합전시대나 태평기 시대 무사들은 어느 나라나 있을 것 같은 무장으로
용감하고 신불의 가호를 비는 무장이지만, 일본 무사 특유의 분위기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일본 사무라이 특성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무가정권으로서는 장기간 평화를 누린 에도시대에 만들어졌는데,
이러한 사무라이 특유의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앞서 설명한 성리학의 영향 등도 있겠지만,
오히려 사무라이 세계를 동경하여 삼국지연의를 보는 듯 열광하던
당시의 조닌 문화 영향도 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 때문에 주군에 충성하여 원수를 갚는 주신구라 이야기에도 조닌들은 열광하며
수많은 군담소설과 이야기가 읽히며 사무라이의 정신세계가 만들어져 갔다.
막말이 되면-.
소위 강렬한 사무라이 의식을 가지고 혼란기를 질주한 사람들 중에는
무사라고 부르기 창피할 정도의 낮은 신분의 무사이거나
심지어는 농민 출신도 많았다.
일제시대 일본군에서 야마토 다마시를 외치며 현대의 사무라이를 자임한 이들 태반은
사무라이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는 농민들의 아들이었다.
무슨 이야기냐-.
20세기 이후 전 세계가 이미지화한 사무라이 이미지, 그 정신세계-.
그 자체가 이미 대중문화의 산물이라는 이야기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사무라이들의 시대?
그 시대가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인지 나한테 한 번 정확히 이야기해주길.
가마쿠라 시대도, 남북조 시대도, 전국시대도 그런 사무라이들 시대는 아니었고,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무사들이 천하를 누비던 그런 시대는 없었다는 것이 내 주장이기도 하다.
아니, 사무라이들이 일본을 지배하던 시대는 분명히 있었겠지만
이들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정신세계로 충실했던 무사들이 횡행했던 시대-.
그런 건 찬바라 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다.. 그 말이다.
사무라이 정신은 그 자체-.
대중문화의 산물이다.
그 대중문화가 조닌문화로 일본에서는 에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것이 마치 전통의 산물인 듯 착시를 갖게 되는 것 뿐이겠다.
*** Editor's Note ***
무사도를 만든 이는 익히 알려졌듯이 19세기 말 니토베 이나조新渡戸稲造[1862~1933)다.
서구에 맞서 이것이 일본이다고 내세울 만한 것을 창안하는 데 몰두한 그는 부시도武士道를 들고 나오면서 이것이 야마토 다이시임을 내세우게 된다.
무사武士, 국민국가가 발명한 국민의 이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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