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1560~1600)라는 사람이 있다.
히데요시의 심복으로 그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대항하여
세키가하라 싸움에서 서편의 주동자로 싸우다 패하여 멸망한 사람인데
이 사람 가문이 위와 같다.
무늬로 만들기 마련인 일본의 가문 문장과 달리 이 사람은 한자로 가문을 만들어 썼다는데,
大一大万大吉로
그 풀이는 all for one, one for all 하면 크게 길할 것이다. 라는 뜻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한문 문장의 수준이 당시 전국시대 무장의 한자 인식 수준을 이야기 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선 중국 바이두에서는 이렇게 뜻으로 풀어놨다.
另一种说法是,“大一大万大吉”的六字纹的含义是:“一”读作“かつ”,与“胜”字谐音;“万”(よろず)代表着万年的繁荣;而“吉”是吉利的文字。在这三个字前冠以“大”字,所以这个六字纹其实代表的是三成祈求幸运的一种愿望。
물론 이런 뜻은 아니다.
이런 심오한 뜻을 달아 놓은 게 아니라,
저 여섯자체서 앞에 대짜 두개는 동사로 쓰인 것이고,
마지막 대짜는 부사이다.
그러니까 앞에 두 개는 한사람을 크게 보고, 전체를 크게 본다의 뜻으로 쓴 동사이고,
마지막 대는 길하다를 수식한 부사라는 말이다.
전국시대는 쌈질 하느라 폼나는 한자운용을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문과 무의 균형잡힌 무사라는건 사람들 머리속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일본 애니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지
전국시대 같이 내일을 알 수 없는 쌈질을 장기간 해야 하는 상황이면
제대로 된 한자운용은 무인들 사이에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로 일본의 무가가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져
공가의 교양이 부럽지 않게 된 것은 에도시대나 되어서의 일이다.
저 깃발을 이시다 미쓰나리가 쓰고 있던 던 당시의 조선의 선비가 저걸 봤으면
처음에는 뭔소리냐고 옆에 물어봤을 것이고
뜻을 듣고 나면 아마 실소했을 것이다.
저런 한자운용을 일본의 근대이전의 상황으로 일반화하기는 어려운데
전국시대 저런 면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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