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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山雜談

덴마크 병원선과 안중근의 아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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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유엔 회원국 중 가장 먼저 의료지원 의사를 표명한 나라로 같은 해 3월 4개의 수술실과 356개의 병상이 구비된 'MS유틀란디아'호가 한국에 파견돼 1953년 10월 16일 덴마크로 귀항할 때까지 한국에 3회에 거쳐 총 999일간 유엔 군인뿐만 아니라 한국 민간인 수만 명을 치료했다.

이 배는 안중근 가족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데 1939년 '박문사 화해극'에 동원되어 호부견자(虎父犬子) 소리를 들은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1907~1952)이 1950년 귀국 후 부산 피난 시절에 폐결핵에 걸려 치료와 요양을 받았던 배이기 때문이다.

이토 사망 30주기를 맞아 경성에 만든 박문사에서 이토 위패에 절을 하는 사진을 찍은 이후 독립운동을 하던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멸시를,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비웃음을 샀던 안준생은 광복 후에도 중국을 떠돌다 1950년 6월에야 귀국했다.

바로 전쟁이 발발해 겨우 피난을 갔다가 이내 몸이 상한 그를 상해 임시정부가 운영한 인성학교 동창생이자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1909~1980) 제독의 주선으로 이 병원선에서 입원 가료를 하다 1952년 11월 18일 오후 4시에 굴곡진 생을 마감한다.

영웅 안중근과 임정 의정원장 손정도를 각각 아버지로 둔 안준생과 손원일은 1920년대 상해에서 친하게 지냈다는데 이후 행적이 두 사람에 대한 평가를 갈랐다.

한 사람은 민족과 아버지의 이름을 저버린 변절자로, 다른 한 사람은 독일 상선사관을 거쳐 대한민국 해군을 창설한 '해군의 아버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해군의 아버지는 전쟁 중 피난처에서 병든 30년 전의 친구를 외면하지 못했다. 덴마크 병원선 입원 주선은 그가 베푼 최대의 호의였을 것이다.

이 병원선이 한국에서 임무를 마치고 덴마크로 귀항한지 70주년이 되었다고 해서 기념행사가 (우연히도 하얼빈의거일에) 열렸다고 한다.

당시엔 몰랐겠지만 덴마크의 인도적 활동이 잠시나마 안중근의 아들을 연명시켰음이 떠올라 적어보았다.

#덴마크병원선 #MS유틀란디아
#안준생 #손원일



*사진 설명 : 1952년 11월 부산 중앙성당에서 열린 안준생의 장례식.(왼쪽 두번째부터 비행사 권기옥, 안정근 부인 이정서, 안중근 여동생 안성녀, 안준생 부인 정옥녀, 안준생 아들 안웅호, 안중근 5촌조카 안춘생,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해군제독 서재현, 안성녀 장남 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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