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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동부 터키 여행] (2) 우라르트Urartu

by taeshik.kim 2024.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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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르투 영역 변화. 기원전 850년 무렵에 반 호수 인근을 중심으로 영역을 확보했다가 약 백년 뒤인 기원전 743년 무렵 최대 판도에 도달한 듯하고, 하지만 전성기는 짧아 그보다 대략 30년이 지난 715~713년 무렵에는 현저히 쪼그라들었음을 본다. 아래쪽에서 아시리아가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요약 
우라르투Urartu는 아르메니아 고원 반 호수 Lake Van 를 중심으로 한 철기 시대 왕국이다.

유프라테스 강 상류 upper Euphrates Rive 동쪽 강둑에서 우르미아 호수 Lake Urmia 서쪽 해안까지, 그리고 이라크 북부 산맥에서 소코카서스 산맥 Lesser Caucasus Mountains 까지 영역이 걸친다.

그 왕들은 Hurro-Urartian 어족 일원인 우라르투 언어로 된 설형문자(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19세기에 재발견된 이후 보통 적어도 부분적으로 아르메니아어를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우라르투는 아르메니아 민족주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라르투가 일어난 반 호수 일대

 
그 왕국은 기원전 9세기 중반에 등장하여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아르메니아 고원 Armenian Highlands 을 지배했다.

우라르투는 아시리아와 자주 전쟁을 벌였으며 한동안 근동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군림했다.

끊임없는 갈등으로 약화한 이 왕국은 결국 기원전 6세기 초 이란 메디아인 Iranian Medes 에게 정복당한다.

고고학적으로는 거대한 요새와 정교한 금속 세공품으로 유명하다. 
 

우라르투는 설형문자 쐐기문자를 사용했다. 그네가 남긴 비문 중 하나.

 
조금 상세한 요약 

히타이트 제국 Hittite empire 이 멸망한 후, 기원전 1000년 초에 아나톨리아 동부에 새로운 왕국이 형성되었으며, 이 왕국은 이후 30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것은 후르리아인Hurrians과 관련이 있고 원래는 히타이트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우라르투 왕국이었다.

그러나 우라르투족은 역사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문명으로 여겨졌다.

우라르투는 첫 번째 천년기까지 히타이트의 많은 관습과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전형적인 아나톨리아 문화였다고 할 수 있다.

초기 우라르투 시대에 그들은 나이리(Nairi)라고 알려진 일련의 토후국으로 그룹화했지만 기원전 900년에는 중앙 군주 아래 연맹을 형성했다.
 

이들의 특징은 산상 요새 같다. 겁이 많았기 때문이지 뭐겠는가?

 
우리는 비문을 통해 첫 번째 우라르투 통치자가 아라무Aramu(기원전 860-840년)이고 그 뒤를 사르두르 1세 Sardur I (기원전 840-830년)였다는 사실을 안다.

Sardur I은 그의 통치 기간에 완성된 반Van 요새에 탑을 추가하는 일을 담당했다.

비문에는 그를 나이리Nairi의 통치자라고 언급하는데, 이는 이때까지 다른 토후국들이 그를 중심으로 집결했음을 시사한다.

Sardur I과 그의 후계자 이쉬푸이니스Ishpuinis 통치 기간(기원전 830-810년) 우라르투 수도는 반Van이었는데, 이곳은 꾸준히 더 커지고 더 번영했다.
 

우라르투 전형적인 바위무덤. 이를 중국에서는 애묘崖墓라고 해서 동한시대 장강 중류 유역 사천성에서 많이 보인다. 보다시피 암벽을 파서 무덤방을 만들었다.

 
Ishpuinis는 그의 통치 기간 동안 그의 아들 메누아스Menuas를 공동 행정관으로 임명하고 Urartu 국경을 확장하여 게바스Gevas 근처 무샤쉬르Mushashir 시를 점령했다.

이로 인해 우라르투는 아시리아인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었다.

이쉬푸이니스(Ishpuinis) 왕은 기원전 810년에 사망하고 그의 아들 메누아스(BC 810-780)가 왕위를 계승했다.

그 뒤를 이어 아르기슈티시 1세 Argishtish I (기원전 780-760년)가 뒤따랐다.

후자는 우라르투 국경을 더욱 확장하고 잠재적인 적에 맞서 일련의 요새를 구축했다.
 

Head of a Bull, Urartu, 8th century BC. This head was attached to the rim of an enormous cauldron similar to the one shown above. Walters Art Museum collections.
Bronze figurine of the winged goddess Tushpuea, with suspension hook
우라르투 콜드론. Museum of Anatolian Civilizations, Ankara
Silver bucket from Urartu in the Museum zu Allerheiligen in Schaffhausen Switzerland, allegedly from the tomb of Prince Inuspua, 810 BC

 
가르기슈티쉬 1세[Argishtish I]가 죽은 후 사르두르 2세[Sardur II]가 왕좌에 올랐으며(BC 760-730) 그의 통치 기간 동안 Urartu는 가장 큰 영역을 이룩했다.

그가 죽자 루사스 1세[Rusas I, 기원전 730-713년)가 그의 뒤를 이어받았는데,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우라르투족은 아시리아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직면했다.

우라르투 국경은 여러 차례 위협받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우라르투는 영토 가장자리에 완충 도시를 건설했는데, 이 도시는 위험 시 버려졌다가 나중에 사람이 거주하게 되었다.
 

A modern depiction of the god Ḫaldi based on Urartian originals. 그네가 섬긴 신 할디가 이런 양태라고. 한데 사자 대가린 왜 밟아? 사자 힘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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