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혁명은 필자가 보기엔
19세기에 급증하여 많게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까지 차지했을지도 모르는,
"유학모칭자"들이 주도했다고 본다.
이들은 기본적인 문자 해독 등 어느 정도의 독서층이고,
사는 것도 다른 이들보다 나은 사람들,
그리고 19세기가 될 때까지 양반들의 집요한 견제를 뚫고
마침내 유학을 모칭하는 데까지 이른 장난 아닌 사람들이라,
19세기 말 정부를 뒤엎겠다고 들고 일어날 사람들은
그 규모나 성정으로 볼 때 이 사람들 아니면 할 만한 사람들이 없다.
이 안에는 당연히 농사를 자기 손으로 짓는 사람도 있었을 터이고,
유학까지 따냈으니 다음 단계로 소과 정도는 급제자도 많이 나왔을 터,
동학혁명이 아래로는 농사꾼에 위로는 진사까지도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이 모든 사람을 하나로 아울러 그 성격을 정의하자면,
"농민"이 아니라 "유학모칭자"들밖에 없다.
19세기의 유학모칭자들은 범죄자들이 아니고,
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장난 아닌 숫자의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지 싶다.
그렇다고 동학"유학모칭자"혁명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동학혁명이라는 이름을 쓰되
우리가 "유학모칭자"라고 부르는 이들에게 빨리
영국사의 "landed gentry"쯤 되는 폼나는 이름을 하나 붙여줘야겠다.
"유학모칭자"가 뭔가, 유학모칭자가.
이름부터가 벌써 조선왕조 최고지배자들의 보는 시각을 딱 드러낸 것인데,
동학혁명의 주체는 위로는 "유학모칭자", 아래로는 "농민"이라고 부르지만,
유학모칭자도 아니고 농민도 아니고,
결국 영국사의 젠트리쯤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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