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세기 유학모칭자들, 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는 거대하다.
많게 보면 전체 조선인구 절반 가까이 될 수도 있으며
적게 봐도 30프로는 넘는다.
그도 그럴 것이 많아 봐야 인구의 20프로를 넘지 못하던 유학호가
19세기 중 후반에 이르면 인구의 60-70프로에 달하게 되는 탓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무더기로 유학호를 달게 되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이들을 부르는 호칭조차 변변한 게 없다.
그 당시부터 돌이켜 보자면, 놀고 먹는자들, 군역회피자, 향촌의 중인, 등등이 이들에 대한 호칭이며
현대 한국의 학계에서도 유학모칭자, 항촌 중인, 등등을 비롯해 가짜양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호칭이 있지만 무려 인구의 절반에 육박할지도 모르는 이 사람들에 대해 통일된 호칭이 없다.
이와 대응하여 가장 많이 쓰이는 호칭이 잔반일 텐데,
몰락한 양반이라는 뜻의 이 잔반이란 호칭은 이 유학 모칭자들에 정확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말해 19세기는 잔반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유학 모칭자들이 늘어난 것이고, 그 중에 잔반은 극히 일부였다고 필자는 본다.
잔반은 소위 말하는 19세기 이전부터도 존재한 향촌의 중인, 소위 서얼의 후손이나 지손들로,
그 숫자만으로는 저 거대한 유학모칭자의 풀을 채울 수가 없다.
필자가 앞에서도 계속 썼지만,
19세기의 유학모칭자들은
그 이후 20세기 한국의 발전을 견인하는 세력이라는 점에서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는 계층이다.
이 계층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없기 때문에,
동학혁명은 "농민혁명"이며 "잔반"과 "농민"들이 참여했다는 소설 같은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이다.
19세기 유학모칭자의 급증.
이것은 결코 이들이 양반이냐 아니냐, 제대로 된 양반이냐 아니냐라는 논쟁으로 끝날 간단한 성격의 사건이 아니다.
19세기 전체를 정의할 수 있는 변화이며,
20세기 이후 한국의 급격한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현재까지 발견한 거의 유일한 근거이자 코드이기 때문에
이 계층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추적으로부터
한국근현대사의 연구는 제대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필자는 감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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