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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실록3권, 순조 1년 12월 30일 임신 4번째기사 1801년 청 가경(嘉慶) 6년
한성부에서 오부와 팔도의 원호와 인구를 아뢰다
한성부(漢城府)에서 민수(民數)를 올렸는데, 오부(五部)와 팔도(八道)의 원호(元戶)가 모두 1백 75만 7천 9백 73호이었고, 인구는 남녀가 모두 7백 51만 3천 7백 92명이었다.
실록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런데 1801년 경 호적을 보면,
실제 인구의 절반도 호적에 안올라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7백 만 명?
그렇다면 이때 이미 인구가 필자가 보기엔 1500만 명 넘었다.
*** [편집자주] ***
누누이 말했다.
전근대 인구통계는 믿을 수 없다고.
인두세 피하려 틈만 나면 누락했다.
세금이다.
조선총독부가 비로소 근대적 인구센서스를 하는데 이 친구들이 할 때마다 놀랬다.
계속 튀어나오더랜다.
을축년대홍수 사망자가 600명?
웃기는 소리다.
천명 훌쩍 넘겨 수천 명이다.
인구센서스에도 오르지 못한 부랑인이 떼죽음했다.
대롱대롱 잠실 한강에서 봉은사 주지가 건진 목숨만도 칠백이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다 죽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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