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HISTORY

둔전屯田 장착하고 북방으로 진격한 고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 14.
반응형

고려사절요 권 제4> 정종용혜대왕靖宗容惠大王 8년(1042) 4월 조에 이르기를 

○ 여름 4월. 동여진東女眞 대상大相 오어달吳於達이 밭을 갈 소를 달라 하니 동로둔전사東路屯田司에 소속된 소 10마리를 하사했다.
 
이 무심한 증언이야말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줄기찬 북방 개척 그 실상에 대한 일대 증언이다. 

동여진이라 하고, 동로東路라 했으니, 지금의 함경도 일대 동해안 쪽임을 유추한다. 

저쪽은 여진 땅이다. 그 여진 땅을 향해 고려는 끊임없이 진격 북상해 올라갔다. 비록 윤관에 의한 여진 정벌이 한때 성공했다가 이내 실패하고 말았지만, 간단없이 전진 북상해갔다. 

지금에서 저 모습을 바라보는 자들은 왜 한꺼번에 연해주까지 치고 오르지 않았느냐 하는 헛소리들을 해대지만(실제 백년 전 우리 조상들, 민족주의 역사학이 그 딴 소리 잘도 했지만) 
 

 
그딴 소리는 군대는 가 본 적이 없는 넘이 전쟁 운운하는 말이랑 진배없다. 

너가 해 봐라!

암튼 고려 왕조 변방 개척은 근간이 둔전제였다. 둔전屯田이란 무엇인가? 

병농일치다. 

군인들이 전쟁 나면 전쟁하고, 전쟁하지 않을 때는 농부로서 농사를 지었다. 

그럴러면 변방 지대에 배치된 군인들을 가족을 대동하고 가야 했다. 

이게 둔전제다. 

고려시대 둔전제가 어느 정도 연구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뭐 제대로 되었겠나 싶기는 하다만, 모르겠다. 이쪽은 내가 선행 연구성과라는 것들을 아주 깡그리 개무시하기 때문이다. 

딴 이유 없다. 그래야 내가 내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저 무심한 증언에는 우리가 궁금해하는 고려 북방 전진 북상 정책 일단을 엿보게 하는 귀중한 대목이 있다. 그것이 바로 둔전제다. 

이 둔전제는 근간이 공전公田이다. 소도 관공서에서 관리했다. 땅도 국가 소유가 근간이었다.

물론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관공서 불하받아 사전으로 변해갔지만 말이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