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는 아마도 천황의 족보를 그린 부록 1권이 있었다는 일본서기 현존본은 전 30권이다.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가 고천원광야희천황高天原廣野姬天皇, 곧 지통천황持統天皇이라 일컫는 女主다.
그의 존호를 풀면 고천원의 광야에 상거하는 여자 대빵이라는 뜻이다. 고천원이 무엇인가? 하늘이다. 그 하늘을 관장하는 이가 누구인가? 천황대제天皇大帝, 약친 천황이다.
朱鳥 원년(686) 9월 무술삭 병오일(9일)에 지통은 남편이자 삼촌인 천무천황天武天皇이 죽자 대권을 이어받았다. 다음 보위를 이을 황태자로 초벽草壁이 엄연히 있었지만, 어찌된 셈인지 그가 대권을 이어받지 못하고 그 어미이자 천무의 미망인인 지통이 수렴청정한다.
이 수렴청정을 일본서기 지통 즉위년 조에서는 임조칭제臨朝稱制라 했다. 임조란 남면하여 조정에 임한다는 뜻이니 조정 일을 관장한다는 뜻이며 칭제란 명령을 내린다는 뜻이니, 이 역시 같은 말이다.
아들이 죽기를 기다렸는지, 때마침 황태자 초벽이 주오 3년( 689) 여름 4월 을미일(13일)에 죽자, 그 이듬해(690) 봄 정월 戊寅朔에 마침내 즉위한다. 이때 장면을 지통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春正月戊寅朔、物部麻呂朝臣、樹大盾。神祗伯中臣大嶋朝臣、讀天神壽詞。畢、忌部宿禰色夫知、奉上神璽劒鏡於皇后。皇后、卽天皇位。
春 正月 戊寅朔에 物部麻呂朝臣이 大盾을 세웠다。神祗伯인 中臣大嶋朝臣이 천신수사天神壽詞를 낭독했다。그것이 끝나자 기부숙녜색부지忌部宿禰色夫知가 신새神璽와 검劒과 경鏡을 皇后한테 바쳤다。皇后가 마침내 天皇 자리에 올랐다.
이 대목을 동북아역사재단 《역주 일본서기3》에서는
"신새神璽인 검과 거울을 황후에게 바쳤다"(559쪽)
고 했지만 엄청난 오역이다. 그러면서 이 역주본은 신새에 注하기를 "황위를 표시하는 보물의 총칭으로 3종의 神器이다"라고 했다.
정확히 저 대목은 "신새와 검과 경을 바쳤다"로 옮겨야 한다.
이로 보아 본문이 오역인지, 아니면 출판과정에서 일어난 오식誤識인지 섣부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注를 유독 신새에 달았다는 점에서 사료를 오독한 것이 한밤중 참나무 모닥불을 보는 듯 환하다.
일본 천황의 즉위식에 이들 삼종 신기가 등장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이런 의식이 그 이전 《일본서기》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보이는 이런 의식은 단 하나도 역사적 사실이라고 믿을 수 없는 분식粉飾에 지나지 않고, 오직 지통의 이 천황 의식만이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왜 중요한가?
도교에서 그 무엇과도 바끌 수 없는 신보神寶 세 가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印, 劍, 鏡이다. 이 印이 지통기에서는 神璽로 등장한다. 한마디로 도장이다. 도장을 찍어야 효력이 발휘함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사에서 최초의 천황은 천지天智다. 천무의 형이요 지통의 아비다. 그가 도교에 심취한 환자임은 이미 말했다.
천황이 무엇인가? 天皇大帝의 약칭이며 하늘의 중심 북극성을 신격화한 것으로, 바로 이 무렵 도교 신학체계에서 천황대제는 최고신이었다.
지통의 즉위에 맞추어 신관神官(나는 이를 우두머리 도사로 본다)인 神祗伯 中臣大嶋朝臣이 낭독했다는 천신수사天神壽詞는 말할 것도 없이 액면 그대로 풀면 천신께 기원하는 새로운 천황의 만수무강 노래다. 용비어천가인 셈이다. 이 天神이 말할 것도 없이 천황대제다. 지상의 천황을 대신하여 천상의 천황에게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신의 자리를 지상의 제왕인 천황이 이어받으려면 당연히 그 징표를 받아야 했다. 도교 교단에서 최고 성직자를 물려받을 때 이 삼종 신기를 받는다. 지통의 천황 즉위식은 동아시아사에서 도교가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웅변한다.
한데 삼종신기를 주고 받는 이 의식이 어찌하여 《화랑세기》에 풍월주 자리를 물려줄 때 그대로 반복하는가?
이 심각성은 나중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16.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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