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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뒤늦게 군번을 불러준 장경호 선생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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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오늘(May 17, 2017) 나는 수원 장안구 경수대로 1092에 위치하는 한울문화재연구원이란 데를 갔다.

해직기자 시절 막바지였던 듯 
그때 내가 의욕만 앞세워 하고자 한 일 중 하나가  문화재계 원로들 증언채록이었으니 이 또한 그 일환이라


2층 이사장실로 장경호 선생을 찾았다.

한창 인터뷰 중인데 선생을 찾는 전화가 왔다. 대화를 엿들으니 국립문화재연구소 조모 박사였다.

내 인터뷰를 방해하고자 하는 공작임이 분명했다.

듣자니 작년 장 선생을 녹취한 자료집이 출간되는 모양이다. 백부만 보내달라고 선생이 말씀한다. 


두 시간가량 걸린 인터뷰를 마칠 무렵 한울문화재연구원 창립자이자 원장인 김홍식 선생이 합류했다.

장 선생이 1936년 
김 선생이 1946년생이다.

기억력에 장애가 생기고 말이 어눌해진 칠십대 김홍식 선생을 팔순 장경호 선생이 통역한다.

술은 마시지 말라는 의사 권고를 한사코 무시하곤 두주불사로 내달리는 김 선생을 장 선생이 계속 뜯어말리는데 말을 안듣는다.

그 장면 못내 먹먹했노라 적어둔다.

세월은 그리 갔다.
실로 무자비하게 말이다.


1970년대 초중반을 두 분은 지금의 국립문화재연구소 전신인 문화재연구실에서 같이 지냈다.

이 멤버에 윤홍로 선생이 이날은 빠졌다.
김홍식 선생도 인터뷰해야 하지만 근자 이 양반 사선을 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오신 분이라 쉽지는 않을 듯 하다.

이날은 내가 힘이 부쳐 일단 철수했다.
녹취도 힘이 든다.
인터뷰이도 마찬가지다.

듣자니 장선생은 정미소 주인의 아들, 금수저다!
정미소..한땐 부의 상징이었다.
울 아버진 문중 소작인
이 인터뷰 일부는 그 다음달 문화재청 월간 소식지 《문화재사랑》에 수록됐다.

연구소가 녹취작업에 나선 준데 나는 감사한다.

아참..알고 보니 장선생이 문화재관리국 창립 멤버셨다.

초창기임은 분명했지만 그 창립멤버인 줄은 몰랐다.
진즉에 할 걸..
기억력이 오락가락하신다.

군번을 여쭈었더니 적어놓은 게 있는데 까먹었다신다.

내가 복귀하고 대략 한두시간 지나 장선생이 연락을 주셨다.

군번이 생각났다며 군번을 불러주신다.

인터뷰 중 몇번이나 선생은 치매 전단계라 말씀한다.

후배들에게 부탁하노니 이런 증언 녹취 많이 해놔라.

그게 역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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