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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직지사와 지끼사 사이


직지사直指寺..

신라에 제도로서의 불교를 도입한 시초인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에서 황악산을 바라보며 저 산 기슭이 절을 세울 만하다고 손가락으로 곧장 가리켜 세운 절이라 해서 이리 부른다 하거니와

김천에선 직지사라 부르지 아니하고 지끼사라 발음한다. 뭐 구개음화니 하는 말이 있으나 신뢰하지 아니한다.


그런 직지사, 아니 지끼사가 이리도 아름다운 줄 미쳐 몰랐다.


의무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대덕산 수도산 기슭에 살 적엔 소풍 갈 데라곤 수도산 청암사 밖에 없었노라 했거니와

그래서 그런 청암사가 죽도록 지겨웠노라 토로했거니와


김천고 입학과 더불어 대덕산을 떠나 김천 시내로 자취생활을 떠난 내가

그 삼년간 김천에 살 때는 놀러갈 데라곤 지끼사밖에 없었다.

마치 청암사가 그러했듯이 지끼사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까닭에 지끼사는 언제나 의무감에 가는 곳으로만 남았다.

김천이 고향이랍시며, 가끔씩 고향을 안내할 때 역시 의무감으로 지끼사를 넣어 돌았다.

지끼사는 언제나 의무감과 강박이었다.


몇해전 어버이날이던가?

그땐 어머니 모시고 역시 의무감으로 지끼사를 갔다.

그렇게 언제나 지끼사는 의무감이었다.

그런 지끼사가 이제는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담번에 가도 그러할까?

자신은 없다만, 이젠 너를 사랑하리라, 혹은 사랑하게 되었노라 고백해 본다.

아!

지끼사여.


죽도록 싫었던 고향산천 청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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