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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라 무령왕과 기병, 그리고 등자
앞에서 썼지만
등자가 있어야 말위에서 활을 쏜다던가
말위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동작은 등자가 나와야 가능했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당장 19세기 후반
미군 기병대와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이던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말을 타고 백인들 쪽에서 흘러나온 라이플을 들고 싸움을 했는데
위 그림에서 보듯이 이들은 등자가 없이도 마상에서 총을
역동작으로도 쏘고 있었다는 말이다.
등자가 없으면 저 동작이 훨씬 쉽게 가능했겠지만
저 동작이 등자가 있어야 가능했던 건 아니다.
전국시대 조 무령왕의 기병이나,
한나라 때 곽거병 위청 등의 기병도
모두 등자가 없던 시대의 기병들이다.
등자가 혁신적인 건 옳겠지만
기병전의 양상 자체를 바꾼 것일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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