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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유전耕者有田[Land to the Tiller]
사전私田 혁파
장원폐지령
여전제閭田制 한전제限田論制 균전론均田論
심지어는 반전수수제班田収授制에 율령제
전시과田柴科 과전법科田法에 이르기까지
이 뒤에 깔린 생각은 모두 한 가지로
고대의 공전제公田制로 돌아가지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본 중국 모두 있었고 실제로 이것이 구현된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중세 이후 이 시스템은 붕괴했고
한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도 이 제도가 부활한 적이 없다.
실학의 소위 개혁론은 이러한 공전제 사상의 기초 위에 있다.
실학자들 주장대로 사전을 부정하고 땅을 나눠준다 해도
그것 자체가 근대화의 시작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실학의 개혁론을 긍정하고 근대화의 단초로 보는 것은
우리사회가 전근대의 근대화에 대한 역사적 통찰이
아직도 매우 미흡하다는 것을 의미하다는 뜻이다.
경자유전, 사전혁파, 토지 분배가 안 되어서 한국이
식민지가 되고 자주적 근대화에 실패했다는 것인가?
어불성설이다.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 치고
근대화가 시작될 무렵,
밭 가는 이들에게 땅이 모조리 주어진 나라도 없었고,
개인의 땅소유가 전면적으로 부정된 나라도 없었으며,
토지분배가 근대화의 시작인 나라도 하나도 없었다.
왜 한국만이 토지분배가 근대화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메이지유신은 왜 토지개혁이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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