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흔히 과전법은 고려말의 겸병과 사전, 대농장을 종식시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성립했다고 보지만,
과전법이 성립하는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주장,
예를 들어 사전私田 혁파, 공전公田 성립, 척불론 등등의 논리는
유학에서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전혀 이것을 그 배경이나 동기로 가지고 와서는 안된다.
우리가 과전법을 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고려말의 사전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하는 그 개혁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년전에 관짝에 넣어 못질까지 해버린 공전제가
느닷없이 왜 다시 부활하여 사전을 몽땅 태워버리고 조선땅에 다시 성립했는가,
과전법 부활의 미스테리를 고민해야 옳다.
과전법은 연구의 포커스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과전법은 혁명이 아니라 일종의 복고인데,
왜 이런 복고 혁명이 시도되었고 그것이 성공을 해버렸는가,
그것도 서기 14세기 말, 중국과 일본 어느 쪽에서도 시도되지 않던 공전의 복구가
하필 한국에서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가,
바로 그 이유를 규명하는 것이 옳겠다.
과전법?
혁명이 아니라 복고이며 반동이다.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 식육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가 (32) | 2024.05.08 |
---|---|
돼지 사육은 중국 역사의 자랑 (30) | 2024.05.07 |
미군이 해체한 일본의 지주-소작제 (29) | 2024.05.07 |
땅만 나눠주면 근대화인가 (37) | 2024.05.06 |
세계사에서 번지수도 찾기 어려운 실학의 개혁론 (39) | 2024.05.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