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웅산 수치에 대해서는 그가 오랜 기간 압제를 견디고 마침내 시민혁명을 이룩한 민주화운동가라는 측면에서는 높이 치는 시각이 압도적이었지만, 그런 그가 실상 절대 권력자로 집권한 2015년인가 2016년 이후에는 독재적 탄압자라는 비판이 부각하기 시작했으니, 그 발단은 미얀마 서부에 거주하는 무슬림 신봉이 주축인 로힝야 족 Rohingya people) 탄압이 수면에 드러나면서다.
수치 자신이 독실한 불교신자이면서, 미얀마 다수가 불교 압도의 사회라, 그런 데서 무슬림을 신봉하는 로힝야족 사람들이 이런저런 탄압과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 특히 수지 집권 이후 그네들이 대한 탄압이 격화하면서 그네들이 집단으로 난민화하고, 그에 대한 탄압 실상을 고발하는 보도와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 행렬이 시각화하면서 그 배후로 수치를 지목하면서, 민주화운동 지도자가 실상은 독재적 탄압자였다는 측면이 각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군부 쿠데타로 구금상태에 처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서는 대뜸 이 로힝야 난민 얘기를 꺼내는 말이 많은 것을 보면, 이 사건이 국제사회에 수치를 새로 보게 한 결정적인 일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렇다고 내가 참말로 이해할 수 없는 이번 사태를 향한 시각은 그렇다면 그렇게 출범한 수치 정부를 총칼로 밀어낸 군부 쿠데타는 옳단 말인가? 내가 왜 이를 묻는가 하면, 수치와 그가 주도한 미얀아정부를 바라보는 그 실상의 비판적인 시각이라는 것도 그것이 과연 객관에 기초한 것인가 아니면 다른 무슨 불순한 언동이 내재한 시선은 아닌가 나는 의심한지 오래인 까닭이다.
이런 미묘한 시각에서 무슬림은 실상은 그와는 대척점에 선 기독교계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인데, 다시 말해 이단에 대한 배척이 남다른 기독교계 시각에서 미얀마는 사탄이 득시글하는 이단의 나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회는 예수의 율법으로 교화되어야 한다. 나는 수치 정부를 바라보는 비판 혹은 냉소 혹은 경멸하는 시각에는 바로 이런 기독교적 관점이 농후하게 투영해 있다고 본다.
이에서 로힝야족이 신봉하는 무슬림은 부당하게 탄압받는 표상이 되어, 심지어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예수의 모습으로 투영되기도 했다고 본다.
이단을 배척 경멸하는 기독교적 시각에서는 각종 행사에 등장할 때마다 합장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아웅산 수치를 용납할 수 없다. 이 차마 용납할 수 없는 심성이 로힝야족에 대한 부당 탄압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하면서 그는 축출되어야 하는 사탄 혹은 악마라는 굴레가 씌워졌고, 그리하여 그런 그가 쿠데타라는 초법적인 부당한 방식으로 축출되었다는 소식에 환호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로힝야를 연민으로 바라보는 이 시각도 그런 시각이 미얀마 사회를 장악하는 주류가 되었을 때는 그와 똑같은 시각은 로힝야족과 그네가 신봉하는 무슬림으로 향할 것이라고 나는 본다. 결국 이렇게 되건 저렇게 되건 로힝야족은 탄압될 수밖에 없는 숙명이 있다. 그 숙명을 어떻게 이겨낼지는 그들이 결정해야 한다.
수치의 아버지 아웅산은 비주류였다. 그런 비주류가 주류가 되어 미얀마 건국의 토대를 닦았다. 그의 딸 역시 같은 길 비슷한 길을 걸었다.
내가 우려하는 바는 로힝야 탄압이라는 논리를 앞세운 수치에 대한 경멸의 시각이며, 그런 시각이 쿠데타 환호와 찬송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결국 로힝야는 피압제의 상징이기도 하면서 그 자체가 폭력의 주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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