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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알려진 리처드 3세의 척추 기형이 뼈에서 확인되었고
모계 유전자가 거의 일치하였으므로 주차장에서 발견된 이 뼈는
리처드 3세 뼈라는 것이 거의 확실해 졌다.
마지막 단계는 리처드 3세 두개골이 나왔으므로
이것으로 얼굴을 복원하여 역사적으로 알려진 리처드 3세의 얼굴 모습 (초상화)와 대조해 보는 것이다.
리처드 3세의 얼굴 모습은 1520년에 그려진 것과 16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이 각각 남아 있다.
리처드 3세는 1485년에 죽었기 때문에
1520년에 그려진 것은 사망한지 얼마 안 되는 것이긴 한데
그림을 그린 사람이 리처드 3세를 직접 봤을지는 의문이긴 하다.
리처드 3세를 그린 그림은 여러 버전이 있긴 한데 대부분 대동소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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