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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이야기/마왕퇴와 그 이웃

[마왕퇴와 그 이웃-126] 군마는 등자가 꼭 필요한가

by 신동훈 識 2025.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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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자의 발명이 곧 기병의 출현으로 이어졌다는 것인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마왕퇴 백화에는 

기원전 2세기에 이미 전차를 끄는 말보다 기병의 군마가 훨씬 많은 수가 있었다. 

이는 사실 당연한 일로 전국시대 조 무령왕은

말타기 편하라고 옷을 바꾸어 입었다는 것이라

기병의 출현과 등자의 발명은 별 상관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물론 이 기병이 등자가 나온 시대의 기병과는 다른 전술을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필자도 하는데, 

막연히 등자가 나와야 기병이 나온다는 생각은 잘못이란 뜻이다. 

사기 조선전에 보면 위만조선이 조선 토벌에 나선 한나라에 태자를 사신으로 보내 사죄하면서 앞으로 말 오천 마리를 바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말 오천마리는 전차를 끌었겠는가 아니면 기마용으로 쓰였겠는가

필자는 이는 기마용 말이었을 것이라 본다. 

 

*** 편집자주 ***

 

뻥이 섞였을 가능성도 고려해야겠지만, 위만조선이 한나라에 복속하는 조건 중 하나로 말 5천 필을 바치겠다는 저 말 말이다. 도대체 위만조선은 어떤 목초지를 저리 광대하게 거느렸기에 말 오천 필을 내놓을 수 있었겠는가? 

평양? 웃기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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