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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왕퇴에 대해서는 충분히 썼고,
필자가 지금까지 쌓아온 전공과 관련해서는 할만큼 이야기한 것 같다.
물론 마왕퇴는 그 성과가 지대막강하여
문물 측면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은 주지하는 바다.
필자가 이리 저리 그 대단한 업적들을 요약할수도 있겠지만,
이 작업은 김단장께서 같이 하고 있어 이 작업은 그 손에 남겨둔다.
필자보다는 문화 저널리스트로 평생을 보낸 김단장님 손을 거치는 편이
아마 독자들에게도 더 나을 것이다.
마왕퇴 이야기는 이것이 끝이 아니고,
이 글의 제목 마왕퇴와 그 "이웃"으로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앞에도 이야기 햇지만 마왕퇴 한묘가 발견된 호남성과 그 인접한 호북성 일대에는
마왕퇴 미라와 비슷한 미라가 꽤 발굴되어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그 내용을 여기 더 쓰면 마왕퇴와 관련해서도 더 할 이야기가 남아 있는것 같다.
그 이야기를 시작할 때 다시 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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