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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말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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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대덕산 설경


한시, 계절의 노래(168)


노자를 읽다(讀老子)


 당 백거이 / 김영문 選譯評


침묵하는 지자보다

말하는 자가 못하단 말


이 말을 나는야

노자에게 들었네


만약에 노자를

지자라고 말한다면


어찌하여 자신은

오천 자를 지었을까?


言者不如知者默, 此語吾聞於老君. 若道老君是知者, 緣何自著五千文.


형용모순 또는 모순어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 문장 안에 모순된 상황을 나열하여 전달하려는 의미를 더욱 강화하는 수사법이다. 가령 “소리 없는 아우성”, “반드시 죽어야 산다(必死卽生)”, “눈을 감아야 보인다”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色卽是空, 空卽是色) 등등, 곰곰이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일상에서 흔히 쓰이면서 말하려는 주제를 극적으로 전달한다. 우리 주위의 고전 중에서 형용모순으로 가득 찬 책은 바로 『노자(老子)』다. 개권벽두에서 벌써 이렇게 선언했다. “도(道)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 ‘도(道)’는 진리를 의미하지만 그 자체로 ‘말하다’는 뜻도 가진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불변의 말이 아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노자』 첫머리에 벌써 ‘침묵은 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셈이다. 하지만 그는 5천 자 수다를 계속 이어나갔다. 5천 자는 유가의 경전에 비해 매우 과묵한 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노자는 가장 먼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란 간판을 달았으므로 바로 뒷구절부터는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 되는 셈이다. 노자의 형용모순 어법은 무엇을 겨누고 있을까? 바로 형용모순으로 범벅이 된 현실이다. 인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높은 관직에 앉아 불의한 짓을 서슴지 않는다. 효도와 화목을 내세우는 왕실이 궁정암투와 집안싸움을 그치지 않는다. 신의를 표방하면서 친구를 배신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노자는 형용모순이면서도 형용모순임을 모르는 현실을 풍자하며 형용모순 어법으로 도(道)에 다가가려 했다. 중당의 대문호 백거이가 『노자』의 그런 특징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노자』를 읽고 왜 5천자의 저작을 남겼냐고 힐난하는 것은 또 하나의 형용모순에 다름 아니다. “문인이 서로 경시함은 옛날부터 그러했다(文人相輕, 自古而然)”란 조비(曹丕)의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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