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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66)
가을밤(秋夜)
당 왕건(王建) / 김영문 選譯評
밤 길어 나뭇잎
이슬 떨구고
가을벌레 문으로 들어
날아 다니네
눕는 일 많으니
골수가 시려
일어나 낡은 솜옷
덮어본다네
夜久葉露滴, 秋蟲入戶飛. 臥多骨髓冷, 起覆舊綿衣.
가을을 상징하는 건 뭘까? 청명한 하늘, 맑은 공기, 울긋불긋한 단풍, 황금 들판, 하얀 억새, 노란 국화, 붉은 노을, 풀벌레 소리, 찬 서리, 빨간 감, 보랏빛 들국화, 투명한 달밤, 휑한 마음 등을 들 수 있으리라. 가을 정취가 흠뻑 배어 있다. 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이런 풍경은 대개 중추(中秋) 이후의 계절 변화에서 오는 이미지들이다. 그럼 우리가 소소한 일상 속에서 초가을의 정취를 몸으로 느낄 때는 언제일까? 이 시가 그런 느낌을 잘 전달한다. 위에서 열거한 가을 정취보다는 미약하지만 여름과 가을의 교차 지점을 민감하게 포착했다. 사시의 변화는 칼로 무 자르듯 명쾌하게 단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맘 때 쯤이면 제법 밤이 길어져서 영롱한 이슬이 나뭇잎에 소복하게 맺힌다. 불빛 찾아 날아드는 풀벌레들은 형광등에 부딪치고, 여름 열기에 달궈져 있던 방구들은 차가운 한기를 사람 몸 뼈 속까지 전달한다. 가을은 그렇게 벌써 우리의 몸을 에워싼다. 영국 시인 셸리는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If the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라고 읊었던가? 마찬가지로 여름이 가면 겨울이 멀지 않은 법이다. 창밖의 어둠이 겨울 전에 어여쁜 가을을 만드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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