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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일본 전국시대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망으로 번역됨) 보면
읽고 난 분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도대체가 사람 이름이 헷갈려서 볼 수가 없다는 것인데
사실 일본 전국시대 무장 이름 보면
유력자나 친족의 이름에서 이름자 하나를 따서 쓰는 편휘가 난무한데다가,
이름으로 쓰는 글자가 몇 가지 안 되어 비슷한 이름이 양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름으로 쓰는 한자가 몇 자 안 되었는고 하면
다른 거 따질 필요 없고, 전국시대 무장들이 무식해서 그렇다는 게 정답이다.
밥만 먹으면 싸움질 하기 바쁘니
당시 일본에도 물론 승려나 공경들 중에는 식견이 높은 이들이 있었지만
칼들고 일본을 지배한 전국시대 무장.
우슨 시간이 있어 글을 배우겠는가.

밥먹고 일어나면 칼부림에 날을 샜으니 당연히 이름자 쓸 수 있는 한자도 제한될 수밖에 없겠다.
공부하고는 담을 쌓은 이런 전국 사무라이들이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성립하자 유학을 본격적으로 파기 시작했는데,
1600년대 후반이 되면 벌써 조선의 성리학을 거의 추격했고
1700년대가 되면 조선에도 없던 유학의 논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으니,
조선 성리학이라는 건 어제까지 공부 담쌓고 쌈질이나 하던 놈들이 맘 잡고 딱 50년만 공부하면 다 따라 잡고 심지어는 뒤집을 수도 있는 정도의
딱 그 정도 수준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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