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부분을 우리는 많이 착각을 한다.
조선의 선비들은 책 많이 본 학자라는 생각이다.
천만의 말씀.
조선시대 성리학 수준이 엄청난 것 같지만
제대로 박박 긁어 공부해 보면 그 시대 조선 유학자들이
지리할 정도로 질질 끌며 벌였던 논쟁이란 것 대부분이
이미 북송대 학자들에 의해 치열하게 전개된 논의가
조선땅에서 재연된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단칠정론? 이기논쟁? 인물성동이론?
전부 북송대 논쟁에서 다 나온 것들로 이미 결론까지 다 나 있었고
우리나라 논쟁은 쉽게 말하자면 수학의 정석 풀이가 이해가 안 가
그 해답집 놓고 싸운 것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성리학이라는 게 공리공론이라는 비판은 있지만
그 수준 자체가 높지 않다는 비판은 없다.
굉장히 수준은 높다고들 생각하는 거 같지만,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조선시대 성리학,
그 개막부터 19세기 문 닫을 때까지
소위 성리철학 논쟁치고 북송대 유학자들이 이미 다 끝내 놓은 이야기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전부 다 북송대 유학자들이 이야기한 것이고,
그 이야기가 이해가 안 가 여기서 치고 받은 것
그것이 조선의 소위 여러 성리학 논쟁이라는 말이다.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조선의 성리학은 수준이 낮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조선의 성리학은 이렇게 수준이 낮았을까?
이유는 공부 열심히 한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부할 시간이 어디 있는가?
노비 일하러 나간 거 감시해야지, 재산 관리해야지,
조선시대 선비들이 학문 어쩌고 한다고 그걸 다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 생각보다는 공부에 관심도 없었고,
재산 지키기와 홍패 백패 하나 얻는 데 더 관심이 컸다는 말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우리처럼 그냥 속물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봐야지
이걸 무슨 대단한 도학자들인양 생각하며 그 시대 역사를 해석해 봐야
그런 도학자 있지도 않았고,
그렇게 죽네사네 공부하고 파들어가 연구한 사람도 없었다.
어떻게 아느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조선시대 성리학 수준이 그 모양이었을 리가 없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무슨 무슨 학 이렇게 이름 붙이며 띄워주기를 계속하는데,
그런 이름 붙여줄 만큼 독창적이고 큰 그림을 그린 학자,
조선시대에 있지도 않았다.
조선시대 성리학 수준은
수학의 정석을 쉽게 풀이하는 학원 강사.
딱 그 정도 수준이로 말해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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