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우리 혹은 망우동 뿌리가 되는 망우는 저에서 보듯이 잊을 忘에 근심 우憂라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이를 딴 고객 망우고개가 있어 이에서 지명이 유래한다. 이 고개는 서울과 경기도 구리가 닿은 지점이다.
그 위치를 보면 현재의 서울특별시 동쪽 변두리라 강남 강북으로 보면 한강 북쪽인 강북이다.
서울시 권역은 조선시대 이래 팽창 일변도였으니 탈취 대상은 언제나 경기도라, 경기도가 서울에서 탈취한 땅은 없고 일방적으로 뺏기기만 했다.
변두리라 함은 본래는 서울이 아니었다가 나중에 그리됐단 뜻이니 망우동 역시 그랬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양주군 망우리로 있다가 1963년 1월 1일부터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속했지만 중랑구가 신설하면서 호적을 다시 옮긴다.
동아시아 군주는 임금 되고 나서 맨먼저 죽어 지가 살 집을 고르는 일을 했다. 이를 수릉壽陵이라 했다.
다 늙어 엎혀서 왕이 된 이성계는 급했다. 언제 죽을지 몰라 미리 무덤 자리를 잡아야는데 후보지가 여러 군데였으나 지금의 동구릉 자리를 점지하고는 돌아오는 길에 이제 '근심이 사라졌다'라고 말한 데서 망우고개라는 말이 생겼댄다.
중랑구를 구성하는 행정동 중 하나인 망우동 올 연말 현재 주민등록상 인구는 대략 오만천명이라 빠글빠글하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이런 망우동 이야기를 풀어내는 특별전을 개최 중이다.
간단히 망우동의 어제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다.
전개방식은 전형의 시간순을 따른다.
곧 저 망우의 유래에서 시작해 그것이 어떤 과정들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며 그 문화사 위치는 어땠는지를 점검한다.
전시 슬로건으로는 낙이망우樂以忘憂를 내걸었으니 요새 문화계 대세인 사자성어를 썼다.
근심을 잊으니 마음이 편안하다 는 정도의 뜻으로 아마도 이성계 일화에서 딴 듯하다.
전반으로 보아 망우리 일대는 저승의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전체가 묘지였을 리는 없고 고개였기에 교통의 격절이었다.
본래 이 일대 토지소유관계가 어땠는지는 불확실하나 세 가문, 곧 동래 정씨, 의령 남씨, 평산 신씨가 이곳을 터잡기 시작했으니 18세기에는 망우동지 라는 지리지도 나온다.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를 오가는 길목이라는 이점이 삶의 토대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망우리는 세 길이 지나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여주, 원주, 대관령을 지나 동해안까지 갈 수 있는 평해대로가 그 첫 번째 길이다.
평해로는 한양과 동해안의 평해 지방을 연결하는 도로다. 이 도로는 경기 동부 지역과 강원도를 연결했다.
이 도로 시작점에 망우동이 있다. 조선시대 전기에는 평해로를 포함해 6개 중요한 도로가 있었다가 성종 시대에 이르러서는
9개로 늘어난다.
뿐만 아니라 망우동은 왕들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거나왕과 왕비 등의 장례를 치를 때 지나는 길이기도 했다.
능행로는 조선의 왕이 조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오간 길을 말한다. 망우동은 능행로 중간에 있었다.
태종이 1409년에 처음으로 능행을 시작했고, 이후 왕들은 흥인지문, 숭례문, 돈의문 등지를 지나 제사를 지내러 갔다.
왕이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안전한지 자주 확인하고. 근처에 잠시 머물며 식사할 곳도 있어야 했다. 신경 쓸게 많기 때문에 한번 만든 능행로는 없애지 않고 계속 이용했다.
이는 식민지시대에 망우동을 지나는 중앙선 철도가 생기고, 광복 이후에는 기차와 버스 등 다양한 교통수단이 이곳을 지나게 되는 토대가 된다.
1939년 중앙선 철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망우역이
새로 생겼다.
강원도의 석탄과 나무 등을 서울로 옮길 때 망우역에 들르기도 했다. 그래서 망우역 주변에는 삼표연탄 공장(1961년)과 아주레미콘공장(1983년) 같은 큰 공장들도 들어섰다.
또 망우리공동묘지에 비석을 세우기 위해서 큰 톨을 다듬는 공장도 많이 생겼다.
1950년대가 서울시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도시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경기도에 속해 있던 망우동은 1963년 1월 1일 서울시 동대문구가 되었다.
이후 망우동은 토지구획정리사업을시작했다.
1988년 서울시에 5개 구가 새로 생기면서 동대문구였던 망우동은 중랑구에 속하게 되었다.
망우리 공동묘지는 따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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