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나름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나랑 인연이 없었다. 11월 11일 50부작 방영을 시작했다지만, 마침 그 시기 나는 유럽을 방황 중이었으므로 누가 출연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얼개조차도 알 수 없었다.
고려와 거란 사이에 벌어진 전쟁 중에서도 2차, 3차 전쟁 시기를 시대 배경으로 삼는다는데 길승수 원작 소설인 《고려거란전쟁: 고려의 영웅들》을 극화했다 한다. 이 소설도 접한 적이 없다.
이 드라마를 선전하는 홈페이지를 지금 방문해 보니, 대문에 이런 문구가 보인다.
당대 최강국 거란과의 26년간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고려의 번영과 동아시아의 평화시대를 이룩한,
고려의 황제 현종과 강감찬을 비롯한 수많은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
그랬구나. 영웅이야기였구나. 꼭 그렇게 단선화하기는 힘들겠지만, 이 역시 한국드라마를 장식하는 절대의 신 민족주의 고취라는 깃발이 펄럭이지 않나 한다.
이 드라마는 실로 우연히 9회 방영분인가를 잠깐 본 적 있는데, 보니 최수종이 지금의 외교부 장관에 해당하는 예부시랑으로서 고려를 침략하고서 서경 공략을 앞둔 거란군 진영으로 그가 외교 담판을 짓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극화한 것이었다.
그 잠깐하는 대사들에서 고주몽이며 김유신이며 하는 기존 역사대하드라마에서 많이 본 구도, 곧 애국심 고취라는 흔적이 물씬함을 엿보았다.
이런 드라마는 보통 그냥 애국심을 고취하는 대사만 나열하고, 그걸로 피끓는 민족주의 정신을 함양하는 프로파간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흐르는데, 잠깐 본 장면들은 드라마 수준이 보통내기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받았다.
시운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대뜸 서가 한 켠에 금사金史와 더불어 나란히 꽂힌 요사遼史를 꺼내 든다. 일찍이 이 요사는 완역본이 나왔을 적에 통독한 적이 있거니와, 언제인가는 꼼꼼히 숙독하리라 하고는 물려둔 것인데 잘됐다 싶었다. 이때가 그때 아니면 언제이겠는가?
야율아보기에 의한 요 건국에서 시작하는 본기부터 시작한다. 그가 대권을 틀어쥐고선 동북아 패자로 등장하고, 그 일환으로 실로 싱겁게 발해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지난다. 916년에 건국해 9대를 거쳐 209년을 존속하며 당당히 역사 주역으로 군림한 거란 역사를 다시 본다.
강감찬이 등장하는 시점은 요국 건국 기준으로 100년이 지난 시점이니, 한참을 짓밟고 나아가야 그 장면에 다다를 것이다. 다만 초창기 이래 흐름을 놓치면 안 되기에 첨부터 밟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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