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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사지陵山里寺址 목탑지 출토 이 석조사리감石造舍利龕 전면에는 양쪽 줄에 걸쳐
百濟昌王十三年季太歲在 /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 / 는 줄 바뀜을 의미)
라는 문구가 확인되거니와, 이는 지금은 이름을 알 수 없는 능산리 백제시대 절이 언제 창건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저 문장은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에 매형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
는 뜻이거니와, 이를 통해 이 절을 창건한 대단월이 매형공주임을 안다.
이 절을 창왕이 직접 창건한 것으로 간주하는 글이 많고, 그에 따라 이를 근거로 하는 논설이 부지기에 이르는데 개소리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분명히 '妹兄公主'다.
이 절을 창건한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은 567년.
이 절을 창왕이 직접 창건한 것으로 간주하는 글이 많고, 그에 따라 이를 근거로 하는 논설이 부지기에 이르는데 개소리다.
이 절을 창건한 주체는 분명히 '妹兄公主'다.
이 절을 창건한 백제 창왕 13년, 간지로는 정해년은 567년.
다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연표를 따를 때는 창왕 14년이다.
이는 연대를 세는 방식의 문제이므로 예서는 논외로 친다.
문제는 '妹兄公主'가 뭐냐는 것.
문제는 '妹兄公主'가 뭐냐는 것.
이 중 '兄'으로 판독하는 글자는 '口 밑에 兀'이라,
이 글자가 兄의 이체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이 현재는 통용 중이다.
만약 이를 따른다면 妹兄公主는 여러 해독이 있다.
심지어 매형과 공주라고 보기도 한다.
'妹兄公主'를 어케 볼 것인가.
만약 이를 따른다면 妹兄公主는 여러 해독이 있다.
심지어 매형과 공주라고 보기도 한다.
'妹兄公主'를 어케 볼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최근 신설이 등장했다.
기호철 선생은 이를 '妹'인 '長公主'로 본다.
이렇게 되면 이 절을 세운 이는 창왕(=위덕왕)의 누이 중 맏이인 공주가 된다.
兄이라는 글자를 長의 이체자로 본 것이다.
다만, 이 글자가 長의 이체자인지는 논란이 적지 않다.
한데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 선생은 설혹 이 글자가 兄이 맞다 해도, '兄公主'는 곧 '長公主'에 다름 아니다고 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설문說文》에서 兄을 풀기를 "長也。从儿从口。凡兄之屬皆从兄。"라 했으니, 이를 근거로 내세운다.
나는 실은 이 근거가 무척이나 끌린다.
長公主는 보통 현재 왕의 누이 중 맏이를 지칭한다.
이에 의하면 장공주는 창왕 아버지인 성왕의 딸들 중 맏이를 말한다.
나는 이 설을 따르고 싶다.
이에 의하면 저 창왕명 석조사리감 글자들은
"(창왕)의 맏누이가 사리를 공양해 세웠다"는 뜻이 된다.
兄이라는 글자를 長의 이체자로 본 것이다.
다만, 이 글자가 長의 이체자인지는 논란이 적지 않다.
한데 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 선생은 설혹 이 글자가 兄이 맞다 해도, '兄公主'는 곧 '長公主'에 다름 아니다고 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설문說文》에서 兄을 풀기를 "長也。从儿从口。凡兄之屬皆从兄。"라 했으니, 이를 근거로 내세운다.
나는 실은 이 근거가 무척이나 끌린다.
長公主는 보통 현재 왕의 누이 중 맏이를 지칭한다.
이에 의하면 장공주는 창왕 아버지인 성왕의 딸들 중 맏이를 말한다.
나는 이 설을 따르고 싶다.
이에 의하면 저 창왕명 석조사리감 글자들은
"(창왕)의 맏누이가 사리를 공양해 세웠다"는 뜻이 된다.
Taeshik Kim
May 29, 2017 at 8: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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