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풍통보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태동하기 전, 가끔 그 전초로 볼 만한 일이 있었으니, 그 남상을 이루는 행위는 말할 것도 없이 도굴이다. 하지만 도굴이 아니라 해도, 실로 우연한 발굴이 더러 있었으니, 조선말 영의정까지 역임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임하필기(林下筆記) 제33권 화동옥삼편(華東玉糝編)에 '팔각경(八角鏡)'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된 글 역시 그런 사정을 보여준다.
김상고당(金尙古堂 김광수(金光遂))의 손자 김노종(金魯鍾)이 그 형 태인군(泰仁君) 김만종(金萬鍾)을 장단(長湍) 산속에 장사 지내려고 묏자리를 파다가 옛사람의 순장물과 송(宋)나라 동전을 발견했다. 송나라 동전이 수백 개인데, 모두 원풍통보(元豐通寶)이니 곧 청묘전(靑苗錢)이었다. 팔각경 한 면에 ‘호주진정석념이숙조자감인면청여명(湖州眞正石念二叔照子鑑人面淸如明)’이라는 글자를 새겼으니 참으로 기이한 물건이었다. 옛날 사람은 대부분 ‘여(如)’ 자를 ‘이(而)’ 자로 썼다.
장단은 경기도 장단이니, 이곳은 고려 서울 개경과 가까워 고려시대 지배층 무덤이 밀집했다. 저 일화가 말하는 무덤은 말할 것도 없이, 묘자리를 파다가 마침 그곳이 고려시대 무덤이 있던 곳이라, 그 발견 경위와 그 발견 물품을 남긴 것으로, 저것이 말하는 고려시대 무덤 부장 양상은 요즘 고고학 발굴성과와도 일치한다.
송나라 동전 원풍통보가 대량으로 매납됐다 함은 그것이 고려시대 무덤임을 말해주며, 나아가 그에서 팔각형 동경이 발견된 사실 역시 그런 정황을 보충한다. 그 명문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궁구해 봐야겠다.
팔각경
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내력을 찾아보니 먼저 김광수(金光遂)는 字가 성중(成仲)이요, 아마도 당호가 상고당(尙古堂)이니, 상고란 옛것을 좋아한다는 뜻이니, 그의 인물됨을 추정한다. 본관은 상주(尙州)이며 1696년(숙종 22)에 태어났지만 죽은 해는 모르는 조선 후기 화가다. 서화고동(書畵古董) 감식가이자 수장가로 유명했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김동필(金東弼)이다. 빈양노인(濱陽老人)의 상고당김씨전(尙古堂金氏傳)과 신유한(申維翰)의 상고당자서후제(尙古堂自敍後題)에 의하면 “집안에 모은 고서화와 진기(珍器)가 모두 천하명품이며 고시문(古詩文) 등도 천하의 기서(奇書)인데, 뜻에 맞는 것이 있으면 가재를 기울여 비싼 값으로 구입했다”라 하는가 하면 “감식이 신묘했다”고 한다. 박지원(朴趾源)은 그를 가리켜 “감상지학(鑑賞之學)의 개창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림에도 능해 그의 작품으로 전하는 것으로 화조(花鳥)와 초충(草蟲) 4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상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한다.
그의 손자 김노종(金魯鍾)과 그의 형 김만종은 행적 검출이 쉽지 않다. 상고당 생년을 보아 영·정조 연간에 주로 활동했을 법하다.
첨부하는 원풍통보와 호주湖州 운운하는 팔각경은 구글에서 검색한 것들로, 대략 저런 식으로 생긴 동전과 동경임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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