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문화 이모저모

월함산(月含山) vs 함월산(含月山) vs 토함산(吐含山)

by taeshik.kim 2018. 3. 6.
반응형

                       <석가탑중수기>



이 석가탑중수기는 내가 2005년 9월 14일에 '불국사 석가탑 중수기 발견, 보존처리 중'이라는 제하 기사로 보도함으로써 세상에 존재를 알린 데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문서 검토 또한 내가 가장 먼저 손을 댔으니, 2007년 3월 신라사학회가 개최한 제59차 학술대회에서 안승준과 공동으로 발표한 '釋迦塔(无垢淨光塔) 重修記에 대한 초보적 검토'라는 글이 그것이다. 이 글은 직후 신라사학회 기관지에 정식으로 수록되었다. 


국립박물관은 이 보도에 할 수 없이 전체 중수기 중 달랑 석장만 공개했거니와, 첨부사진은 그 석장 중 하나이니, 이 석장짜리로 진행한 검토는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이에서 적지 않은 발견을 했다고 자부했거니와, 그러는 과정에서 무척이나 의아스런 대목이 고려 초기 현종시대에 작성한 이 문건에서 불국사를 지칭해 '월함산 유가업 불국사(月含山瑜伽業(佛)國寺)'라 한 대목이 그것이다. 


월함산이란 요즘도 한국 사찰 간판에서 흔해 빠졌으니, 해당 사찰이 위치한 산림을 지칭한다. 유가업이란 불교 교종 분파 중에서도 법상종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저 말은 월함산에 자리한 법상종 소속 불국사라는 뜻이다. 


신라사학보에 실은 논문에서도 나는 그런 의문을 표출했다고 기억하거니와, 왜 산 이름이 월함산(月含山)인가 무척이나 의아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곳이 지금의 경주 토함산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산이라 해도 얼마든 다른 명칭이 있을 수 있고, 또 토함산이라고 해도 아주 규모가 크니, 지역에 따라, 혹은 협곡에 따라 각기 이름을 지닐 수 있으니, 토함산 대신 월함산을 썼다 해서 하등 이상할 대목은 없다. 


토함산(吐含山)은 이미 신라 초기에 보이는 명칭이며, 나아가 그것이 당시 신라 서울 금성 혹은 신라 국토 전체로는 동쪽에 위치한 명산이라 해서 동악(東岳) 등으로 일컬었으니, 토함은 호흡 작용을 말하는 것이라, 즉, 숨을 들이마심을 含이라 하고, 뱉어냄을 吐라 한다. 이는 대표적인 도교 수련법 중 하나인 '토납(吐納)'과 통하는 말이다. 토함산이 토납법과 관련 있는 명칭이라니 이색적이긴 하다. 


한데 고려 초기에 불국사 사람들이 작성한 문서에서는 불국사가 자리잡은 뒷산을 월함산(月含山)이라 썼다. 아마도 토함산이 월함산을 포함하는 전체 산악 명칭인데 견주어, 월함산은 불국사가 위치한 지역만을 한정한 것이리라 볼 수 있겠다. 


내가 의문인 점은 '月含'은 대체 한문 문법으로 보아 성립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월함은 글자 그대로는 '달이 머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이 의아했다. 이 경우 달[月]은 문장 주어다. 다시 말해 머금는[含]는 주체가 달이다. 


그보다는 '달을 머금은 산'을 표현하려 했을 것이므로, 그 명칭은 '함월산(含月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며, 나는 이런 생각을 저 논문에서 썼다고 기억한다. 


어떻든 '월함산'은 다른 문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신라시대 토함산을 지칭하는 명칭 중 하나로 월함산을 적출할 수 있다. 이 점이 중수기가 알려준 새로운 사실 중 하나다. 


그러다가 오늘 나는 우연히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로 들어가 그것이 제공하는 각종 한문고전 번역 자료를 서칭하던 중에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제21 경상도(慶尙道) 경주부(慶州府)를 훑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에서 뜻밖에도 토함산, 혹은 그 일부를 지칭하는 이름으로 함월산(含月山)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첫째 경주 지역 산과 강을 소개하는 【산천】 조에서 함월산을 들면서 "(경주)부(府) 동쪽 45리에 있다. 신라 때는 남악(南嶽)이라 일컬었다"고 하는가 하면, 두 번째 경주 일대 사찰과 사당을 정리한 【불우(佛宇)】 편에서는 기림사(祗林寺)라는 사찰을 소개하면서 "함월산(含月山)에 있다"고 한 것이 아닌가? 


"신라 때 남악"이라 했다는 표현으로 보아, 저 함월산을 토함산에 대한 전체 명칭으로 썼음을 알 수 있거니와, 승람에서 '남악(南岳)'이라 표현한 대목은 아마도 '동악(東岳)'의 오류 아닐까 한다. 신라시대 남악은 지리산이었다. 기림사는 현재도 번창하는 조계종단 소속 유서 깊은 사찰로, 그 진산은 말할 것도 없이 토함산이다. 


보다시피 토함산 이칭으로 신람에서는 함월산이라 했다. 말 그대로 달을 머금은 산이라 해서 저리 부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석가탑중수기를 통해 품은 의문을 적나라하게 풀어준 명칭 아닌가? 


아무튼 저 역사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면, 고려시대에는 토함산 이칭으로 월함산이라고 부르다가, 시대가 흘러 적어도 조선 초기에는 함월산으로 바뀌었다고 볼 수도 있다. 


반면, 저 석가탑중수기가 함월산을 월함산으로 잘못 쓰지 않았나 하는 느낌도 못내 떨치기는 힘들다. 더불어 일종의 콩글리시처럼 달을 머금은 산 어순 그대로 월함이라 표현했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도 같이 해 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