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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잡간迊干, 혹은 잡찬迊飡과 소판蘇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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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迊’이라는 글자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淸代에 완성한 《강희자전康熙字典》을 보면, 이 글자를 【酉集下】 【辵部】에 배치하면서, 그 발음은 《광운廣韻》을 인용해 ‘子와 答의 반절(子答切)’이라 하고, 이어 《집운集韻》을 응용해서는 발음은 ‘作答切’이라 하면서, “帀라는 글자와 같다. 두루 갖춘다(혹은 두른다)는 뜻이다. 止를 거꾸로 세워 帀이다. 더러 ○라고 쓰기도 한다(同帀。周也。从反之而帀也。或作○)”고 했다. 나아가 《正韻》을 인용해서는 “세속에서는 잘못 써서 匝이라 쓰기도 한다(俗譌作匝)”고 했다. ○는 자판에서 글자가 지원되지 않지만 ‘迊’이란 글자에서 책받침 안 글자 ‘帀’이 ‘市’인 글자다. 이로써 보건대 ‘迊’이라는 글자는 발음으로는 ‘잡’이고, 뜻은 ‘周’, 곧 ‘빙 두른다’임을 알 수 있다. 


‘迊’이라는 글자가 《說文》에는 안 보인다 했지만, 저에 해당하는 글자가 따로 있어 ‘帀’라는 부수자에 배치한 ‘帀’이 그것이다. 이 글자를 《說文》에는 “빙 두른다[周]는 뜻이다. 止라는 글자를 거꾸로 세워 帀이다(周也。从反止而帀也)”고 했다. 이 글자를 《康熙字典》은 【子集下】 【匚部】에 배치하면서, 《增韻》을 인용해 “帀은 세속에서는 匝이라 쓴다”고 했고, 《篇海》를 인용해서는 “또 迊이라 쓰기도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匝’은 무엇인가? 이 글자가 《說文》에 보이는데, 한데 그 설명이 “周也。从反止而帀也”라 해서, 《康熙字典》이 인용한 《集韻》의 설명과 똑같다. 


요컨대 迊과 帀과 匝, 세 글자는 실상 같아 서로에 대한 異體字이며, 발음은 ‘잡’ 정도이고, 의미는 ‘周’라고 정리하겠다. 


이에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그 풀이로 한결같이 저들 글자를 ‘周也’라 푼다는 점이다. 이는 의미 풀이이기도 하면서, 실은 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저들 글자가 적어도 《說文》 단계에서는 ‘周’라는 발음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周’를 《唐韻》에서는 ‘職流切’, 《集韻》과 《韻會》에는 ‘之由切, 音州’라 했으니 지금과 거의 같은 ‘주’ 혹은 ‘쥬’ 정도임을 추찰한다. 


이에서 내가 무척이나 의하한 대목은 신라가 17단계 관위(官位) 중 제3등을 지칭하는 말로써 하필 迊 혹은 帀 혹은 匝이라는 글자를 썼느냐 이거다. 저들 글자는 일상생활에서 쓰임이 거의 없다. 쓰임이 없다 함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유독 저 글자를 빌려 신라는 제3등 관위를 지칭하는 데 썼다. 예컨대 진흥왕시대 금석문들인 황초령비나 마운령비를 보면 ‘迊干’이라 썼다. 

                                                  <황초령비 '迊干'>  


이건 신라 관위에 접미사처럼 흔히 쓰는 ‘飡(찬)’ 같은 글자도 그렇다. 흔히 ‘干’이라는 글자와 대응하는 이 글자는 널리 알려졌듯이 우랄알타이어 계통에서 우두머리를 의미하거니와(예, 칭기즈'칸' 쿠빌라이'칸' 거서'간' 마립'간'), 그럼에도 저 글자는 쓰임이 제로라 봐도 무방하다. 하고 많은 글자 중에 저리 어려운 글자를 고른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더불어 또 하나 궁금한 대목은 ‘迊干’에 해당하는 같은 개념어가 ‘蘇判(소판)’이라는 사실이다. 소판 역시 그 본래 의미를 추찰하기는 현재로서는 곤란하기만 하다. ‘迊干’과 ‘蘇判’은 대응관계를 찾을 수가 없다. 음이 비슷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뭐 뜻이 통하는 구석도 찾기가 무척이나 힘들다. 蘇判의 判은 조선시대 判書의 判 같은 느낌도 준다.  


‘迊干’은 뭐고, ‘蘇判’은 또 뭔가? 무슨 대응 관계가 있기에 같은 3등 관위를 지칭하는 용어로 같이 썼을까? 의문이 의문을 부른다. 


*** 이 포스팅에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국어학자 이상규 경북대 명예교수는 "소판은 훠판과 통할 것입니다. 여진어에서 훠판은 군관조직 명칭입니다. 노걸대에도 나오고 향가 찬기파랑가에도 화반이 나옵니다. 북방 여진어의 흔적으로 보여집니다. 아니면 여진어에서 고구려를 경유하여 신라에 유입된"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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