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EWS & THESIS

묘현례廟見禮란 무엇인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4. 21.
반응형
묘현례 재현

 
어제인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으니, 한국문화재재단과 함께 2023년 종묘 묘현례를 오는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4일간 종묘에서 개최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 보도자료는 묘현례廟見禮를 일러 말하기를


왕비나 세자빈이 혼례를 마친 후 조선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진 종묘를 알현하는 것으로, 종묘에서 행해진 국가의례 중 유일하게 왕실 여성이 참여했던 자리다.


라고 풀었으니, 이 말 잘 뜯어서 새기고 고쳐야 한다. 

묘현례廟見禮라는 말은 묘현廟見하는 의식[禮, ritual]을 지칭하는 것이니, 예서 관건은 묘현廟見이 되겠다.

이 경우 廟는 조상 신주를 봉안한 사당이요, 見은 이 경우 대개 '현'으로 읽어 배알한다[謁] 는 뜻이다. 

따라서 묘현廟見이란 사당을 배알한다는 뜻이겠지만, 익히 알려졌듯이 한문은 어순이 한국어와는 대개 정반대라, 사당을 배알한다면 어순을 바꾸어 현묘見廟 정도로 표현하지 저리 말하는 것은 콩글리시와 다름 없다.

따라서 이 경우 廟見의 廟는 부사 혹은 見과 동급인 다른 동사로 보아야 하는데, 나는 부사로 보아 사당에서 배알하다는 정도로 뜻을 푼다.

문제는 사당에서 누구를 배알하느냐가 관건이겠거니와, 사당의 주신主神들인 특정 가문 조상들을 말한다. 

물론 그런 맥락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번 행사가 겨냥하는 바가 조선시대 왕비 채택 혹은 책봉과 관련한 일이니 보도자료를 저리 썼겠지만, 묘현례는 모름지기 왕실 행사가 아님을 하시何時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사당을 갖춘 집안이라면, 그런 집안에서 며느리를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반드시 따르는 일이 묘현례다. 

그렇다면 저 말, 혹은 그 의식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묘현례 재현

 
동아시아 거의 모든 의식은 한대漢代 이전에 나온 삼례三禮를 근간으로 삼거니와, 삼례란 주례周禮 의례儀禮, 그리고 예기禮記를 말한다.

이를 흔히 도덕교과서쯤으로 안이하게 이해하지만, 저들은 동아시아 전통시대를 구속한 절대의 경전이라, 실상은 헌법과도 같아서 저에서 규정하는 일을 어기는 행위는 법적 처벌 대상이었고, 저걸 어겼다 해서 실제 무수한 사람이 사지가 찢겨나가는 형벌을 받았으니, 그 가장 대표가 불효不孝와 불충不忠이었다. 

저 중에서 예기는 실상 묘한 데가 있어, 그 한편 한편이 각각 전승되다가, 혹은 그것이 붙고 떨어지고 하다가 결국 전한 말기가 되어 우리가 아는 그 텍스트로 완성을 보게 되는데, 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숙질간인 대덕戴德과 대성戴聖이다. 

두 사람 모두 그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예학禮學에 투신해 각기 일가를 이루었으니, 숙부인 대덕이 정비한 예학서를 대씨 집안 큰 어른이라 해서 대대례기大戴禮記라 하고, 조카 대성이 편집한 것을 소대례기小戴禮記라 해서 구별한다. 

한데 역사에 끼친 영향은 조카가 편집한 소대례기가 압도적인 위상을 자랑하니, 이 친구가 편집한 판본이 바로 우리가 흔히 아는 예기다.

삼촌이 편집한 대대례기는? 본래 텍스트가 그러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상당한 누락이 있는 까닭이라고 보는데 쥐꼬리만큼만 남았다.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샜다. 저 묘현이라는 말은 현존 통행본을 기준으로 소대례기 권 제44 혼의昏義 편에 보인다.

혼의昏義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 혼인하는 의미, 둘째 혼인에 따르는 의식이 그것이라, 보통은 후자로 풀며, 나 역시 여기서는 후자를 따른다. 

개중 한 단락에 이르기를


공자가 말씀하셨다. "딸을 시집보내는 집안에서는 사흘 밤 촛불을 끄지 않고 계속 켜 놓으니 이는 그 딸과 헤어짐을 생각하는 까닭이다. 며느리를 맞이하는 집안에서는 사흘 낮 음악을 연주하지 않으니, 이는 조상님들 음덕을 생각하는 까닭이다. (결혼한지) 석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사당으로 찾아가 (조상을) 배알하는데, 그때 (며느리는) 시집온 며느리 입니다 라고 아뢴다. 날을 가려서 조상님들께 제사를 드리는데 며느리가 되었음을 완성했다는 뜻이다. 

孔子曰 「嫁女之家,三夜不息燭,思相離也。取婦之家,三日不舉樂,思嗣親也。三月而廟見,稱來婦也。擇日而祭於禰,成婦之義也。」
 

묘현이라는 말은 바로 이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훗날 왕비건 세자빈이건 다른 사대부가이건 사당을 갖춘 집안이면 모름지기 며느리를 맞고서 사당을 배알하는 일을 바로 묘현이라 한 것이다. 

 

묘현례 재현

 
중종실록 28권, 중종 12년(1517) 7월 19일 癸巳 4번째 기사에 이르기를 


홍문관이 고적古籍을 상고하여 단자單子를 써서 아뢰기를,

"《시경詩經》의 위풍魏風 갈구편葛屨篇 주註에 ‘부인을 얻은 지 석 달 만에 묘현을 한 뒤에 부녀자의 일을 맡아 본다.’ 하였고, 《가례家禮》 묘현례廟見禮 주註에는 ‘옛날에는 석 달 만에 묘현을 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이 너무 멀어서 사흘로 고쳐 쓴다.’ 하였습니다."

하고, 두씨杜氏의 「통전通典」 황제 납후의皇帝納后儀에 황후 묘현의주皇后廟見儀註가 있으므로 또 본문本文에 부표하여 아뢰었다.

○ 弘文館考古籍, 書單子以啓: "《詩》 《魏風》 《葛屨》篇註: ‘娶婦三月, 廟見然後, 執婦功。’ 《家禮》 《廟見禮》註: ‘古者三月而廟見, 今以其太遠, 改用三日。’" 《杜氏通典》 《皇帝納后儀》有皇后廟見儀註, 又付標本文以啓。


라는 말이 있는데, 시경 주석은 아마도 공영달 혹은 정현 주소를 말할 것이요, 가례 주는 누구 주석인지 내가 찾아 보지 못했다.

정현이건 공영달이건, 또 두우 통전이건, 나아가 훨씬 후대 출현하는 가례건 뭐건, 다 예기 후속편들이라, 그것을 주석하면서 다 끌어다 댄 것이 바로 소대례기 저 본문이다. 

이에서 조심할 점은 결혼한지 석달만에 종묘 같은 사당에 배알? 너무 멀잖아? 

그래서 훗날 이 기간을 땡겨서 한 달을 하루로 쳐서 사흘째 되는 날인가로 묘현하는 날짜가 바뀐 것으로 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