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이런 반론을 가할지도 모르겠다.
저 무령왕 시대에 백제가 그렇게 예제禮制를 철저하게 관철하려 했을까?
그러니 이런저런 절차 생략하고 했을 것이니, 남녀 위치가 바뀐 것도, 머리를 남쪽으로 둔 것도 하등 이상할 점은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무령왕릉은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예제가 규정한 그대로 실현하려 했다.
3년상만 해도 그것이 공자에서 비롯하지만 그건 책에서나 있는 이야기일 뿐이요,
실제는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니 해서 각종 편법이 판을 쳤으니, 이는 무엇보다 책 혹은 이상이 규정하는 절차일 뿐이요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그대로 관철하기에는 적지 않은 애로가 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령왕릉은 희한하게도 곧이곧대로 이 예제를 그대로 실현하려 했다.
당시 동아시아 어디에서도 실현하려 하지 아니한 그 예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지키려 했다.
이 점에서 무령왕과 그의 왕비 장송葬松은 펀더멘탈리즘의 성전이다.
따라서 그렇게 철저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예제가 규정한 명령들을 철석같이 구현하려 한 무령왕릉에서 저와 같은 현상,
곧, 남녀 매장 위치가 바뀌었고, 머리 위치가 바뀐 것은 분명 변칙인 것이며,
따라서 그 변칙은 우연이 아니라, 무엇인가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암시한다 하겠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을 풀어야 한다.
왜 저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는가?
이에서 우리가 주시할 것은 예제가 규정한 것과는 아주 정반대한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저 의문을 푸는 열쇄는 바로 이 정반대한 구현 그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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