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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무한반복 OCN, 뇐네 용돈 찔러주기용 구색 '기조강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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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나는 한국학계가 청산해야 할 고질 중 하나로 '회고와 전망' 남발현상을 꼽았거니와, 그에 대해 이런 회고와 전망으로 먹고 산 어떤 교수 지인이 반박하기를, 

"뭐 이거나, 언론사에서 매년 연말에 하는 10대 뉴스가 뭐가 다르냐" 

했거니와, 물론 그런 지적 일정 부분 타당하다고 받아들인다. 다만, 내가 말하기를 "뉴스는 하루에도 수만 건이 쏟아져서 학술계 동향이랑 같은 반열에 올려놓을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음을 밝혀둔다. 

그에 이어 오늘은 저 기조강연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조강연이란 무엇인가? 이는 외국 학계에서 도입한 전통으로 key note에 대한 옮김이라, 이것이 야금야금 국내 학술계에 정착하고는 요새는 무슨 학술대회니 하는 데는 약방 감초격으로 모름지기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키노트가 통용하는 한국쪽 사정은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이 놈의 기조강연이라는 걸 보면 재탕 삼탕 사탕 오탕 십탕에 지나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다. 기조강연이야 물론 새로운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라기보다는, 그 대회 전체의 의의라든가 그것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어떤 거대한 철학을 담아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라고 나는 본다. 그래서 이는 대체로 학계 중진 혹은 원로 중에서 이 역할을 맡기거니와, 무엇보다 이 기조강연은 담론과 철학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노땅들 용돈 주는 자리다. 퇴직하시고 나서 뭐 별로 할 일도 없으신데, 그런 뇐네들 불러다가 가오 세워주고, 용돈 쥐어주자고 섭외하는 일이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학회 있음 나와 봐. 

뭐 이유야 어찌됐건 기조강연은 그 나름의  소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 그렇다 치자. 그래, 기조강연 부를 수도 있고, 할 수도 있다 치자. 한데 그 내용을 볼짝시면, 뭐 새로운 시각이나 거대한 담론은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어, 엣날 이야기나 하는가 하면, 남들 다 아는 얘기 무한반복하기도 하고, 그 내용이라는 것도 단 한 구석 새로운 시각을 발명하는 바도 없어, 기조강연자 자신으로 보면 맨 그 얘기가 그 얘기라, 자기표절에 지나지 않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발분하는 기조강연 유경험자가 있을지 모르겠거니와, '거의'라 했으니, 반론은 거부한다.   

국내 사정을 고려할 때 용돈주기, 혹은 생색내기용 기조강연은 쏵 없애버러야 한다. 그 기조강연 지불할 비용 있으면, 다른 새로운 연구성과 불러다가 듣는 게 백배 남는 장사다. 뭔 기조강연이란 말인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경주에서 열린다는 어느 학술대회 발표진용이다. 이 콧구멍 만한 학술대회에 무슨 기조강연이 두 개나 된단 말인가? 더구나 내가 아는 어떤 기조강연자는 올해만 해도 저런 각종 기조강연만 적어도 5군데서는 본 듯 하다. 기조강연 자판기도 아니고 뭐하는 짓인가?  

그리고 솔까 이 대회 학술주제라는 신라왕경 운운한 저런 대회가 도대체 몇 번째인가 이제는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지겹기만 하다. 똑같은 걸로 하고, 또 하고, 또또 하고, 이젠 울거먹고 울거먹다 찌꺼기도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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