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알 두 쪽. 이것이 내가 어날 때 달고 나온 전부다. 누군 금수저 계속 물고 있다가 이빨이 나갔다며, 그룹 회장직도 훌훌 던지던데, 그런 금수저 은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과의 전투는 힘이 좀 부쳤다. 나는 이를 매양 백미터 달리기에 견주며 말하길,
저들은 백미터 라인에서 달리는데 내 출발선은 언제나 백오십 미터 지점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을 따라잡느라 가랭이가 찢어지고 심장이 터졌다고 말이다.
내가 무에 정의감 유별나게 투철한 인간이리오? 평균적 인간만큼 적당히 썩었고, 적당히 정의롭기도 했다. 소시민에 가깝다 할진댄, 이런 나도 언제나 거품을 물 때가 있으니, 저 백미터 달리기 출발선이 말하는 기회의 균등, 차별의 법적 제도적인 제거만큼은 단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학위가 없다고, 교수가 아니라고 해서 주는 차별과 불평등만큼은 언제나 분노를 자아낸다. 기자가 되고자 하는데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해서 기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은 있을 수도 없고, 더불어 기자가 되려면 신문방송학과를 나와야 하며, 더구나 그 석박사가 있어야 한다는 제한이 있을 순 없다. 누구나 기자가 될 기회는 열려야 한다.
정치를 하는데 정치학과를 나와야 하는가? 그런 규정 제한 어디에도 없다.
한데 저 고고학은 언제나 그리도 고고한지 대학을 나오고, 더구나 고고학과를 나오고, 그에 더해 그 관련학과 석박사 학위가 있어야만 발굴을 하고 조사원이 되고, 책임조사원이 되고, 조사단장까지 한다고 한다. 그것도 교수가 되면, 그리해서 부교수만 되고, 2년만 현장에서 적당히 구르면 막바로 쾌속정 타고는 씌웅 하고 날아가 조사단장까지 꿰찬다 한다. 대학 나오지 않으면 칠년인지 십년을 굴러야 하는 조사단장을 지들은 2년만에 초고속으로 해치운단다.
민주사회는 근간이 기회균등이요 자격 동일이다. 기준은 같아야 한다. 이것이 공정사회 핵심이다. 백미터 달리기 하는데 교수라고 오십미터 지점에 서고, 석박사라 해서 칠십미터 지점에 서며,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해서 백오십미터 지점에 서서 출발하라 할 수는 없다. 백미터 달리기라면 모두가 백미터 지점에 서서 요이땅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아는 민주사회 요체다.
이런 요구를 그 이해 집단, 예컨대 교수놈들이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을 용납하고픈 생각은 더 없다. 말로는 사회 정의, 고고학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하는 꼴이 차별사회 구현이라면 나는 용서할 생각이 없다.
그에 더해 그런 요구를 정부가 더더구나 옳거니 하면서 받아들이고, 그것을 법제화할 수는 없다. 그런 정부는 전복과 타도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놈들을 독부獨夫라 한다.
적당히 썩은 나지만, 불알 두 쪽만 달고 났기에 저 백오십미터 라인에서 출발한 그 불평등이 뼈에 사무치기에 저 조사원 자격기준은 용서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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