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December 18, 2013 내 페이스북에 일련으로 연재한 것을 하나로 통합한 것인 바,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누군가 서면 인터뷰에 응해서 내가 작성한 것이로되, 이것이 어떤 형태로 공간이 되었는지, 아니면, 무슨 그의 글에 인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오늘 기준으로 딱 5년 전 오늘의 일이어니와, 그런 까닭에 그 시간만큼 내 생각이 달라진 대목이 없지는 않을 것이로대, 그 시대 내 생각을 증언하는 한 단편으로 남겨둔다.
1. 2008년 2월 10일 대한민국의 대문인 숭례문이 하나의 불씨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문화전문 김태식 기자님께서는 당시 사건을 접하고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 우리에게는 문화재 참사 중에서는 그 사건은 아마도 생중계로 접한 최초의 비극일 겁니다. 당시에도 문화재 담당 기자였던 저는 생중계를 ‘시청’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에 출장갔다가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사건이 있었던 거지요. 인천공항에 내려 집에 전화를 했더니 집사람이 “남대문에 불이 났다”고 하더군요. 남대문시장에 불이 난 줄 알았지요. 곧바로 광화문 회사로 출근하는 길에 화재 직후 숭례문 현장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처참한 몰골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평생 서울 생활을 한 장모님은 생중계를 지켜보며 우셨다더군요. 비록 나중에 편집된 화면이기는 했지만 화재 장면을 보니 저 또한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안타까움과 함께 울분이 치밀었지요. 홧김에 그때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아직 우리는 멀었다. 숭례문에 버금가는 다른 문화재가 더 타야 정신을 차린다”고 말이지요. 울분은 문화재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홀대라고 할까 그런 데서 북받치는 감정이었습니다.
2. 당시 숭례문 화재 사건의 원인으로 미숙한 대응과 화재 발생 시의 매뉴얼 부재가 거론되었는데요, 저희는 이것을 문화재에 대한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문화재에 대한 이런 태도가 숭례문 사건 이외에도 2005년 낙산사 범종도, 2006년 창경궁 문정전, 2013년 덕수궁의 담장 등이 화재로 피해를 입는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김태식 기자님께서는 이런 생각에 동의하시는지 궁금하고 만일 다른 생각이 있으시다면 간략하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안전불감증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유형의 문화재 중에서도 목조문화재가 화재에 특히 취약하다는 인식은 누구나 공유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그런 사례 말고도 화재에 잿더미로 변한 문화재는 우리 말고도 외국에서도 꽤 있습니다. 적어도 이 분야 종사자들은 방재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부족한 예산과 인력이라는 난제에도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던 것입니다. 한데 숭례문은 특수한 사정이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화재 발생시의 매뉴얼이 부재했던 것입니다. 전통건축물이라는 특징, 더구나 기와 아래 지붕 속에서 불이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매뉴얼이 없었던 것이며, 설혹 있었다고 해도 그걸 따질 만한 계제가 아니었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할 점은 저와 같은 방화에는 어쩌면 대책 자체가 원천적으로 없다고도 고백해야 하는 곤혹스러움이 있습니다. 열 사람, 백 사람이 도둑 한 명 못 막습니다. 작정하고 불 질러 버리겠다고 하는데 그런 사건이 언제, 어느 순간, 어디에서 있을 줄 알고 막겠습니까? 다만, 부족하지만 ‘숭례문 학습효과’로 부를 만한 현상도 적지는 않습니다. 가깝게는 작년이지요? 문화재라는 가치에서 보면 외려 숭례문보다 몇 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숭례문과 같은 방식의 방화를 시도했지만 다행히 초기에 진압됐습니다. 숭례문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 당국에서 도포제라고 해서 화재 초기 방재를 위한 약을 칠했던 것인데, 대참극을 막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숭례문 사건을 계기로 유사시 방재 매뉴얼 등이 확실히 정착했다는 점을 가장 큰 학습효과로 꼽을 수 있겠지요.
3. 대내외적으로 문화재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서 지자체들은 지역관광자원으로서 문화재의 개방 및 활용에만 관심이 있을 뿐 관리측면에 대한 책임의식은 부족하여 행정 순위에서 밀려 관리에 필요한 예산이 삭감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셨을 때, 문화재에 대하여 행정적으로 이렇게 역설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만약 생각하시는 이상적인 해결방안이 있으신지, 실현가능한 해결방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한 가지 확실히 지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자체가 지역관광자원으로 문화재 활용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런 인식이 꽤나 광범위한데, 저는 외려 반대로 봅니다. 문화재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제 보기에는 아직 역부족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지요.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금 한국문화재가 안은 많은 문제가 저는 이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지요. 문화재는 고급 소비재임에도 아직 제값을 못 받고 있습니다. 문화재는 지역사회, 시민, 그리고 국민에 더 가까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문을 더욱 활짝 열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흐름이 분출하면서 문화재 보존이라는 가치와 그것을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곳곳에서 충돌하고, 요란한 파열음을 빚기도 합니다. 개발 욕구가 지나친 대표적인 데가 템플 스테입니다. 템플 스테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사찰이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충돌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 해결은 간단합니다. 경관에 맞게 설계도 하고 시설을 지으면 됩니다. 이 쉬운 방법이 망각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점은 지금 전국에 걸쳐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는 아우성만 있지, 문화재 때문에 떼돈 벌었다는 사람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경주가 이렇습니다. 경주는 요즘 들어 계절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관광객으로 넘쳐납니다.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는 사람, 분명히 곳곳에 존재하며, 그에 대한 여러 대책이 필요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만, 문화재 때문에 떼돈 버는 데가 분명히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이나 사업체가 부담하는 세금이 제일 많겠지요. 문화재에서도 부의 분배가 있어야 합니다. 문화재로 돈 버는 사람은 정해진 세금 말고도 그 이익 일부 혹은 상당부분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내어 놓아야 합니다.
4. 저희는 문화재에 대한 미성숙한 국민의 의식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에 대해서 전문가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문화재에 대한 미성숙한 국민 인식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만일 가장 큰 문제가 미성숙한 국민의식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문화재 훼손의 원인에 대해 어떤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 답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앞서 제가 숭례문 사건에 울분이 솟았다고 했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이 바뀌는 중입니다. 문화재에 대한 미성숙한 국민(시민)의식이라고 할 때 우리는 늘 문화재 홀대를 이야기합니다. 평소에는 문화재는 쳐다보지도 않다가, 혹은 문화재 때문에 못살겠다는 말만 하다가 숭례문 사건과 같은 일만 생기면 너나 가릴 것 없이 ‘문화재 애국주의자’로 돌변하는 현상을 말하겠지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겁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여타 다른 우리 사회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화재 또한 ‘참여의 과잉’ 시대에 진입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라고 하면 어떤 생각 드시나요? 저만의 착각일까요? 왠지 모르게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나요? 나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뭐 그런 느낌 들지 않나요? 아니라면 제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어떻든 이런 기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문화재 사건만 터지면 사방에서 한마디씩 거듭니다. 그런 일을 겪을 때마다 이처럼 문화재를 사랑하는 민족, 아마도 한국사에 국한하면 단군이래 최고조일 것이며, 지구상에서도 유래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저는 이를 ‘참여의 과잉’이라고 진단합니다. 화재나 홍수와 같은 천재 혹은 인재로 훼손되는 문화재는 전체 문화재 중에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사건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일 뿐이지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 참여의 과잉 사태에 문화재가 곳곳에서 압살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곳이 문제라 해서 그곳을 뜯어 수술을 하고, 또 다른 곳에 상처가 났다 해서 응급 땜질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증상은 하나인데 처방은 백 가지가 나오고, 더구나 그런 처방이 중복으로 횡행하니 결국 문화재는 누더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여의 과잉, 관심의 과잉이 문화재를 죽이는 주범입니다.
5. 이 외에 우리나라 문화재 보존 실태에 대하여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문화재는 무너져서도 안 되고, 부서져도 안 되며, 불에 타도 안 되며, 생채기조차 나서도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일평생 살며 갖은 풍상 겪듯이, 그리고 파고가 있듯이 문화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백 년, 천 년, 그리고 이천 년을 견딘 문화재는 실은 그 기간에 없어진 것들에 비하면 숫자가 정말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이라고 하면 우리는 대뜸 고려시대 건물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배웠으며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까닭은 고려시대에 잘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수한 천재지변도 견뎠겠지만 더욱 냉혹히 말하면 끊임없는 보살핌의 손길에서 살아남은 겁니다. 그러므로 저것은 고려시대 건축물이기도 하면서 조선시대 건축물이고, 또 20세기 21세기 건물이기도 합니다.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서 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이며, 붙어있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이가 많은 건축물은 어딘가에서 썩고 무너지는 중입니다. 이를 무너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70살 할머니 피부에 주름이 졌다고 20대 피부를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주름이 있어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래된 것이 무너지고 떨어져 나가는 일을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관점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숭례문 단청이 훼손됐다? 그래서 문제라고 삿대질할 수도 있지만, 그래? 그럼 새로 칠하면 되지 하는 여유가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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