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중국에 상륙한 이후 초반기 선두에 서서 그와 쟁투한 흐름은 유교보다는 실은 도교였다. 구겸지(寇謙之·365~448) 시대 북위 도무제(道武帝)가 불교를 고사 직전으로 몰아넣은 것도 그 뒤를 추동한 세력은 도교였다.
대(對) 불교 투쟁은 당말(唐末)이 되면서 새로운 흐름이 전개되거니와, 유교가 본격 가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주자성리학은 실은 한유(韓愈·768~824)를 시발로 삼거니와, 그 성리학이 한유에게 배운 것은 격렬한 불교 혐오주의였다.
이 《파사론破邪論》은 글자 그대로는 사악함을 깨뜨린다는 뜻이거니와 법림(法琳·572~640)이 말한 사악함은 주로 도교였다. 도불(道佛) 투쟁사에서는 《법원주림(法苑珠林)》과 더불어 너무나도 중요한 문헌이다.
우리는 도교를 향한 극혐을 통해 역으로 당시 도교의 실상 일단도 들여다 본다.
이를 주어 바꿔치기한 이가 있다.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1342~1398)이다.
그의 《불씨잡변佛氏雜辨)》은 실은 법림이 대표하는 불교 옹호론에서 주어만 바꿔치기 했을 뿐이다. 공격 주체와 공격 대상이 바꿔치기 된 것이다. 이른바 적대변 변용이라는 것이다.
이 적대적 변용의 대표적인 보기가 경찰서에서 흔히 보는 쌍방 고소 폭력사건이다.
"네가 (날) 때렸지"
"이런 xx놈, 네가 (날) 때렸자나"
이것이 바로 그 보기다. 이 주어바꿔치기의 유혹은 언제나 크다. 한국사에서 이 주어바꿔치기의 대표주자가 바로 광개토왕비 신묘년조와 임나일본부다.
임나일본부. 그것이 천관우건 김현구건 나는 이들이 주어를 바꿔치기한 데 불과하다고 항용 지적한다. 임나일본부 경영 주체를 왜에서 백제로 바꾼 데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편한가? 왜(倭)로 설정한 주어만 바꿔버리면 기존 주장이 내세운 모든 땅이 백제 혹은 가야가 되기 때문이다.
경영 주체를 왜로 내세운 일제시대 임나 강역 지도랑 그 극복을 부르짖으며 가야 주체주의, 혹은 백제 주체주의를 내세운 사람들이 내세운 가야 영역 지도가 실은 똑같은 이유다.
***
이상은 October 24, 2017 내 페이스북 게재 동명 글을 약간 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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