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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문화재 안내판의 문제, 방이동 고분의 경우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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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동 제3호분 芳荑洞第3號墳

방이동 제3호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1980년대 정화 공사로 일부 조사되었으며, 2015년 봉분 침하현상이 발견되어 2017년 발굴조사 후 현재의 모습이다.

발굴조사는 2017년 3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하였다. 발글 결과 봉분 높이는 최대 5m, 너비는 최대 17m로 거대한 규모이며, 봉분 하부 경계에는 호석(둘레들)이 설치되어 있다.


 

 

 

 



구조는 널방, 널길, 무덤길로 구분된다. 널방은 묘광을 판 후 다듬어진 석재를 이용해 벽을 쌓았고, 천장은 너비 2m의 큰 돌을 이용해 덮었다.

상부에 과거 도굴 구멍이 확인되었으며, 도굴로 인해 출토유물이 적다.

널방 내부에서 치아를 비롯한 인골과 부서진 토기 파편 등을 수습하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고분군 중 3호분에 대한 현지 설명이 이렀다. 사진은 LH 김충배 부장이 찍은 걸 무단으로 엎어왔다. 

이 안내판 문구 누가, 혹은 어느 업체에서 썼는지 모르나, 정말로 끌어엎어버리고 싶다. 한 줄 한 줄 간평한다. 

방이동 제3호분은 굴식돌방무덤으로 1980년대 정화 공사로 일부 조사되었으며, 2015년 봉분 침하현상이 발견되어 2017년 발굴조사 후 현재의 모습이다. 

첫째 주술관계가 안 맞다. 술 취해 썼나 보다. 뭔가 빠뜨린 듯하다. 2015년 봉분 침하현상이 발견되어 2017년 발굴조사했다. 지금의 모습은 당시 발굴조사 성과를 토대로 복원한 것이다. 는 정도의 문장이었던 듯하다. 

이 문장은 '방이동 제3호분은'이라 시작했지만, 이 고분 명칭과 주어가 중복한다. 씰데없는 말이다. 그냥 '이 무덤은'이라 하거나, 아예 주어를 빼버려야 한다.  

굴식돌방무덤으로..느닷없는 표현이다. 굴식돌방무덤이 뭐야? 지들만을 위한 표현이다. 덧붙여 굴식 돌방무덤??? 이 자체 무슨 말이야? 돌방을 굴 스타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돌방을 터널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돌방이란 돌로 벽체를 쌓은 방이라는 뜻일 테니 말이다. 이 대목은 돌로 쌓은 무덤방과 외부에서 거기로 통하는 길[혹은 통로]을 터널[혹은 굴) 모양으로 마련한 무덤 정도로 바꿔야 한다. 

1980년대 정화 공사로 일부 조사되었으며...비문非文이다. 주변 정화 공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부 조사했으며 정도로 바꿔야 한다. 

발굴조사는 2017년 3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진행하였다. 발굴 결과 봉분 높이는 최대 5m, 너비는 최대 17m로 거대한 규모이며, 봉분 하부 경계에는 호석(둘레들)이 설치되어 있다.

현장 안내판에 이런 날짜가 중요한가? 하등 중요하지 않다. 더구나 바로 앞 문장에서 2017년 발굴조사했다고 하지 않았는가? 씰데없는 중복이다. '거대한 규모'...뭐가 거대해? 거지발싸개 같은 표현이다. 따라서 이 문장은 아래 정도로 바꿔야 한다. 

발굴조사 결과 봉분은 높이 최대 5m, 너비는 최대 17m로 드러났다. 공중에서 내려다 보았을 적에 둥근 모양인 봉분 아래쪽 테두리를 따라서는 호석護石이라 해서 봉분 흙내림을 막는 구실을 하는 돌벽이 확인됐다.  

구조는 널방, 널길, 무덤길로 구분된다. 널방은 묘광을 판 후 다듬어진 석재를 이용해 벽을 쌓았고, 천장은 너비 2m의 큰 돌을 이용해 덮었다. 

문장은 그런대로 성립하나, 무슨 말인지 모르게 해놨다. 신통방통한 재주다. 다듬어진 석재는 얼토당토 않은 표현이다. 다듬은 돌 이라고 하면 된다. 

널방은 죽은 이를 넣는 나무로 만든 상자인 널을 놓는 공간이라 해서 이리 부른다. 이 널방과 무덤길을 잇는 별도 통로가 있는데, 이를 널길이라 한다. 이 무덤에서는 이런 널방과 무덤길 말고도 널길을 두루 갖춘 곳이다.

널방은 구덩이 모양으로 땅을 움푹 파내고, 다듬은 돌들로 사방 벽을 쌓아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천장에 해당하는 부분에다가는 너비 2미터 정도인 돌로 덮었다. 
 
 

상부에 과거 도굴 구멍이 확인되었으며, 도굴로 인해 출토유물이 적다...(널방?) 위쪽에서는 도굴꾼들이 뚫은 구멍이 있었으며, 이때문에 널방에서 발견된 유물은 적다. 

널방 내부에서 치아를 비롯한 인골과 부서진 토기 파편 등을 수습하였다...치아를 비롯한 사람뼈 일부와 그릇 조각 일부만 건졌다.  

더불어 이 무덤이 언제적 만들어졌는지가 언급이 전연 없다. 방이동 고분군은 축조 주체가 백제 혹은 신라 양갈래로 갈리거니와, 그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런 점들을 반영하고, 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충분히 담는다 했을 적에 나는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1980년대 주변에 정화조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부분 조사를 했지만, 정식 발굴조사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2015년 집중호우에 봉분이 주저앉음에 따라 내부조사가 필요하다 해서 2017년 정식 발굴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봉긋하게 쌓아올린 봉분은 높이가 최고 5m, 너비는 최대 17m였다. 공중에서 볼 때 둥근 봉분 아래쪽 테두리를 빙둘러서는 흙내림 방지를 위한 돌벽을 설치한 흔적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덤은 주검을 놓는 공간인 널방을 중심으로 거기에서 외부에서 통하는 굴 혹은 터널 모양으로 판 무덤길을 마련했다.   

널방은 구덩이 모양으로 땅을 움푹 파낸 다음 다듬은 돌들로 사방 벽을 쌓아올려 만들었고 천장에다가는 너비 2미터 정도인 돌을 놓았다. 

널방 위쪽에서 도굴 구멍이 확인됐다. 실제 도굴 피해가 심해 발견된 유물은 적은데 치아를 비롯한 일부 사람뼈와 그릇 조각 일부만 건졌을 뿐이다. 

이 무덤은 구조나 출토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만들었음은 확실하다. 다만, 신라무덤인지 백제무덤인지 의견은 엇갈린다. 

***

왜 이런 참상이 문화재 현장마다 벌어지는가?

무자격자들한테 일을 맡기기 때문이다. 예서 무자격자란 발굴에 간여한 고고학도, 혹은 그 기관, 글과는 전연 거리가 먼 관련 업체와 그 종사자들을 지칭한다. 


고고학도들이 글을 쓰면 꼭 저 꼴이 벌어진다. 어떤 업자가 저걸 도급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엉뚱한 놈한테 원고를 맡기고 엉뚱한 놈한테 감수를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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